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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국의 글쓰기

     

     

    나는 일단 뭐라도 쓴다.

    주제건, 첫 문장이건, 전하고 싶은 한 줄이건 상관없다.

    생각나는 것을 쓴다.

    물론 쓰다 보면 생각이 바뀌고, 처음 쓴 글은 형체도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인가 써놓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

     

     

    아내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1989년 아내와 결혼했다.

    아내는 늘 칭찬한다.

    내가 아는 나는 60점에 불과한데, 아내는 나를 80점으로 치켜세운다.

     

    처음엔 꿍꿍이로 알았다.

    그래야 내가 움직일 테니까.

    그러나 30년이다.

    일관되게 속일 순 없다.

    진심이란 걸 5~6년 전에 알았다. ​

     

     

    기 드 모파상

    보바리 부인을 쓴 귀스타브 플로베르에게 제자가 있었다.

    몇 달이 지나도록 플로베르에게 배우는 게 없자, 제자가 불만을 토로했다.

    ‘제가 소설을 배우기 위해 선생님댁 계단을 수천 번 오르내렸지만, 선생님은 아무런 가르침도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플로베르가 물었다.

    ‘알겠네, 그럼 자네, 우리 집 계단이 몇 개인지는 알고 있나?’

     

    이에 답하지 못한 제자는 큰 깨우침을 얻었다.

    그 제자가 바로 ‘여자의 일생’,‘목걸이’를 쓴 기 드 모파상이다. ​

     

     

    나는 공감 능력 없이 50년을 살았다.

    앞만 보고 달렸다.

    손톱만 한 열대어 구피가 굶어 죽을까 봐 아내가 명절 때마다 어항을 싸 들고 본가에 가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던 내가 쉰 넘어 출판사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출근 첫날 자기소개를 하라고 했다.

    사장 빼고 전원이 여성인 직원들 앞에 서서 살아온 과정과 포부를 얘기했다.

    자기소개가 끝나자 가장 고참인 듯 한 분이 잠깐 보자고 했다.

     

    복도에 서 있던 그녀가 한마디 했다.

    ‘앞으로 그렇게 길게 말하지 마세요’ 문을 꽝 닫고 들어갔다.

    뒤따라 들어가니 직원들 눈빛이 하나같이 살벌했다. ​

     

     

    어휘와 생각은 긴밀한 관계 속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우리나라 사람은 무지개색을 ‘빨주노초파남보’로,

    미국인은 남색을 제외한 여섯 가지 색으로,

    멕시코 원주민은 ‘흑백적황청’ 다섯 가지 색으로 표현한다.

     

    이런 어휘 사용으로 한국인은 무지개 색깔이 일곱 가지라고 생각하고,

    미국인은 여섯 가지,

    멕시코 원주민은 다섯 가지라고 생각한다.

     

    어휘가 생각을 지배하고 생각에 영향을 준다는 걸 알 수 있다. ​

    풍부한 어휘력이 악용되기도 한다.

    조지 오웰은 ‘더블 스피크’를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더블 스피크란 사실을 호도하기 위해 쓰는 모호한 표현을 일컫는다.

    예들 들어,‘ 해고’를 ‘전직 기회 제공’이나 ‘비자발적 고용계약 해제’, ‘인력 구조 혁신’ 등으로 쓰는 것이다. ​

     

    미국 부시 정부가 부자 감세 정책을 내놓으면서,

    가난한 사람의 반발을 의식하여 ‘세금 구제 정책’이라고 명명한 것도 비슷한 경우다.

     

    ‘노동 유연성’이란 말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좀 거칠게 말하면 ‘해고를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 아닌가?

     

    ‘비정규직’을 ‘시간선택제’로,

    아파트나 오피스텔 ‘미분양분’을 ‘회사 보유분’으로,

    ‘주차시설 없음’을 ‘자율 주차’로 표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

     

     

    나도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그날을 떠올린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몹시 아팠던 날이었다.

    엄마가 밤새 머리맡에 있었다.

    이마 위에 얹어준 차디찬 수건이 시원했다.

     

    걱정하는 엄마의 한숨 소리에 맞춰 나는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해열제인 듯한 시럽의 쓴맛도 그날은 감미로웠다.

    엄마 품에 온전히 안겨 있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밤이었다. ​

     

     

    연애편지 뭉치의 행방은?

    1989년 가을, 미리 얻어놓은 신혼집에 내가 먼저 들어가 살고 있었다.

    아내가 될 여자의 이삿짐이 도착했다.

     

    그런데 처녀 시절 아내가 다른 남성네에게 받은 연애편지 뭉치가 통째로 없어졌단다.

    결혼 5년 차까지는 ‘그걸 왜 내게 묻느냐?’고 화를 냈고, 결혼 10년이 넘어서는 ‘정말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지금은 묵비권을 행사 중이다.

     

    요즘도 아내는 뻑하면 묻는다.

    ‘모두 용서해 줄 테니 사실대로 얘기해. 불 싸질렀지?’

    나는 아내의 연애편지 행방을 모른다.

    아니, 무덤까지 갖고 갈 거다.

     

     

    나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여러 명의 아내를 만난다.

    이른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밥상을 차리는 아내의 모습은 거룩하다.

    늦은 저녁, TV 보고 있는 내게 셋 셀 동안 끄지 않으면 가만 안 두겠다고 엄포를 놓는 아내는 무섭다.

     

    하루에도 몇 번씩 천사와 마귀를 넘나든다.

    집에서 후줄근하게 널브러져 있는 아내는 공적인 모임에서 만나는 아내와 전혀 다른 사람이다. ​

     

     

    비교와 대조_지식, 지성, 지혜

    지식은 남이 깨우친 것이고, 지성은 내가 깨우친 것이며, 지혜는 경험이 깨우친 것이다.

    지식은 아는 것이고, 지성은 아는 것을 사용하는 것이며, 지혜는 스스로 아는 것이다.

    지식은 머리로 익히고, 지성은 가슴으로 배우며, 지혜는 연륜으로 쌓는다.

    지식은 자료에서 찾고, 지성은 현장에서 찾으며, 지혜는 체험에서 찾는다.

    지식은 책을 읽어서 얻고, 지성은 세상을 읽어서 얻으며, 지혜는 자신을 읽어서 얻는다.

    지식은 자랑하고, 지성은 겨루며, 지혜는 침잠한다.

    지식은 빌려오는 것이고, 지성은 지식을 창조하는 능력이며, 지혜는 진리에 이르는 길이다.

    지식은 밋밋하고, 지성은 날카로우며, 지혜는 부드럽다.

    지식이 자연과학이라면, 지성은 사회과학이고, 지혜는 인문과학이다.

    지식은 이해와 인식의 대상이며, 지성은 판단과 실천의 대상이고, 지혜는 자각과 통찰의 대상이다.

    지식은 과거의 축적이고, 지성은 현재의 의미이며, 지혜는 미래에 대한 예견이다.

    지식이 잡은 고기라면, 지성은 고기 잡는 도구이며, 지혜는 고기 잡는 법이다.

    지식이 읽기라면, 지성은 쓰기이고, 지혜는 퇴고다.

    지식은 독자의 이해를 구하고, 지성은 독자의 실천을 기대하며, 지혜는 독자를 성찰하게 한다.

    독자는 지식을 얻으면 똑똑해지고, 지성을 접하면 사리에 밝아지며, 지혜와 만나면 조용히 생각한다.

     

     

    소설 가운데 참고할 만한 첫 문장을 추려봤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_김훈(칼의 노래) ​

     

    9등 문관 야코프 빼뜨로비치 골랴드낀이

    긴 잠에서 깨어나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고 마침내 눈을 번쩍 치켜뜬 시각은 아침 여덟시쯤이었다._도스토옙스키(분신) ​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_조세희(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

     

    국경의 긴 터널을 지나자 설국이었다._가와바타 야스나리(설국) ​

     

    내가 왜 일찍부터 삶의 이면을 보기 시작했는가,

    그것은 내 삶이 시작부터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_은희경(새의 선물) ​

     

    이곳으로 사람들은 살기 위해 온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이곳에 와서 죽어가는 것 같다_라이너 마리아 릴케(말테의 수기) ​

     

    여자 형제들은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든지 혹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든지 둘 중 하나다_루이제 린저(삶의 한가운데)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_나쓰메 소세키(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내 아버지는 사형집행인이었다_정유정(7년의 밤) ​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_신경숙(엄마를 부탁해) ​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의 침대 속에 한 마리의 커다란 해충으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_프란츠 카프카(변신) ​

     

    그는 걸프 해류에서 조각배를 타고서 혼자 낚시하는 노인이었고, 고기를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날이 이제 84일이었다._어니스트 헤밍웨이(노인과 바다) ​

     

    그 일은 잘못 걸려온 전화로 시작되었다._폴 오스터(뉴욕 3부작) ​

     

    지금보다 어리고 쉽게 상처받던 시절, 아버지는 나에게 충고를 한마디 해주셨는데 나는 아직도 그 충고를 마음속 깊이 되새기고 있다_ F. 스콧 피츠제럴드(위대한 개츠비) ​

     

    최고의 시절이었고,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_찰스 디킨스(두 도시 이야기) ​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_레프 톨스토이(안나 카레니나) ​

     

    당연히 이것은 수기이다_움베르토 에코(장미의 이름) ​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_이상(날개) ​

     

    재산깨나 있는 독신남은 아내를 꼭 필요로 할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보편적 진리이다_제인 오스틴(오만과 편견) ​

     

    나를 이스마엘이라 부르라_허먼 멜빌(모비 딕) ​

     

     

    일방통행로

    발터 베냐민

    ‘작가의 기술에 관한 13개 테제’에서

     

    ‘필기도구를 아무거나 쓰지 마라.

    까탈을 부려라.

    그것은 사치가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라고 했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몰입과 긍정심리학의 개척자로 유명하다.

    그는 창조적인 사람의 요건으로 세 가지를 들었다.

    창의적 사고,

    전문 지식,

    몰입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