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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어머니의 음성같이 옛 애인의 음성같이

     

     

     

    어린 왕자(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저길 봐! 밀밭이 보이지. 난 빵을 먹지 않으니 밀은 내게 아무 소용이 없어.

    그러나 너는 금발이니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밀밭을 볼 때 네 생각이 날 거고,

    밀밭을 스쳐가는 바람 소리도 좋아하게 될 거야.

    제발 날 길들여다오!'라고 간청한다.

     

    그 후 어린 왕자는 깨닫는다.

    수천 송이의 장미꽃이 있어도 자신의 장미꽃보다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이 물을 주고 덮개를 씌워주고 벌레를 잡아준 '내 장미꽃'이니까.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사랑의 비밀을 가르쳐 준다.

    '중요한 건 마음으로 보아야 하는 거야. 본질적인 건 눈에 보이지 않거든.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언제나 책임을 느껴야 해.'

     

    어린 왕자가 비행사 아저씨에게 가르쳐 준 사랑의 비밀도 바로 그것이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이 숨어 있어서야...' ​

     

     

    꽃들에게 희망을(트리나 폴러스)

    늙은 애벌레는 노랑 애벌레에게 교훈을 남긴다.

    '나를 잘 보아라. 나는 지금 고치를 만들고 있단다.

    고치란 피해 달아나는 곳이 아니라 변화가 일어나는, 잠시 머무는 숙소와 같은 거야.

    애벌레의 삶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니까. 그것은 하나의 커다란 도약이지.'

     

    그리고 일단 한 마리의 나비가 되면 참된 사랑을 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그것은 애벌레들이 할 수 있는 온갖 포옹보다 더 훌륭한 것이라고.

     

    '너는 한 마리 아름다운 나비가 될 수 있어.

    우리는 모두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다!' ​

     

     

    데미안(헤르만 헤세)

    '우리는 공식적으로 분열된 절반의 세계가 아니라 전체의 세계를 숭배해야 한다고 생각해.

    우리는 신의 제사와 동시에 악마에 대한 제사도 지내야 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는 내부에 악마까지도 포함하고 있는 하나의 선을 창조해야 하는 거야' 라고 데미안은 말한다. ​

     

     

    크눌프, 삶으로부터의 세 이야기(헤르만 헤세)

    크눌프는 말한다.

    '나는 밤에 어디서 불을 볼 때만큼 더 아름다운 것을 알지 못한다네.

    캄캄한 밤에 공중으로 올라가는 초록빛과 푸른빛 구슬 빛이 가장 아름다워질 무렵에

    그것은 작은 포물선을 그리며 사라져가는 게 아닌가.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기쁨과 함께 불안을 느끼는 것일세.

    그것이 서로 맺어져 있기 때문에 그것이 영원보다 더 아름다운 것일세'

     

    이렇듯 크눌프는 모순을 사랑하는, 순간을 사랑하는 무상의 철학자다.

    그는 인간의 숙명적인 고독을 이해한다. ​

     

     

    이방인(알베르 카뮈)

    그는 살인죄로 체포되어 형무소에 수감된다.

    관선 변호사는 그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머니를 사랑했던가요?'

     

    뫼르소는 대답한다.

    '아마 사랑했을 테지만 그건 아무 의미도 없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는 자기가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을 바랐던 경험이 있지 않겠는가?'

    그는 설명을 계속하려다 귀찮아서 말을 포기해버린다.

     

    검사는 뫼르소의 살인죄보다도 인간으로서의 부도덕성, 즉 무관심을 고발한다.

    그리고 '나는 이 사람이 범죄자의 마음을 가지고 자기 어머니를 매장한 점을 고발하는 바입니다'라고 말한다. ​

     

     

    눈물과 미소(칼릴 지브란)

    옛 로마 사원들의 잔해가 남아 있는 어느 폐허에서

    젊은 지브란은 한 고독한 사람이 무너진 사원 기둥 위에 앉아 동쪽을 응시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지브란은 한참을 바라보다가 용기를 내어 그 사람에게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삶을 바라보고 있소' 그것이 대답이었다.

    '오, 그것뿐입니까?' 지브란이 물었다.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은가요?'

     

    그 사건은 지브란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주었다.

    과거의 잔해 속에 앉아 다가오는 미래를 바라보는 삶의 관찰자,

    도시의 혼잡스러움과 타인들과의 충돌에서 빠져나와 홀로 새벽을 망보고 있는 이 관찰자는

    바로 지브란의 시인에 대한 관념, 바로 그것이었다. ​

     

     

    인간희극(윌리엄 사로얀)

    호머는 그로간 씨에게 묻는다.

    '우리가 아는 어떤 사람, 알지 못하는 누군가, 우리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이들이 죽어갈 때,

    그들이 그냥 헛되이 죽는 건 아니겠죠, 안 그래요?'

     

    늙은 전신 기사는 한참 기다린 다음에야 대답한다.

    '난 이 세상을 오랫동안 살아왔지만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알 수가 없단다.

    얘야, 난 그 답이 존재하는지조차도 자신이 없구나. 그것은 젊은 질문이고 나는 늙은이니까' ​

     

     

    허클베리 핀의 모험(마크 트웨인)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기본 정신은

    '아무 회의 없이 정착하여 사는 사람들'에 대한 희화화된 증오와 완전한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뗏목 정신이다.

     

    이 뗏목이야말로 미시시피강으로 상징되는 거대한 세계를 헤쳐나가는 부랑의 무기이다.

    이런 뗏목 하나, 자유를 향해 표류해갈 수 있는 이 순진하고 정직한 뗏목 하나가 있음으로써

    허클베리 핀은 미시시피 강변의 사회를 심판할 수 있고 유토피아를 향해 거침없이 제멋대로의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이다.

     

    이 뗏목은 그의 때묻지 않은 숨결일 수도 있고,

    미성년적 양심일 수도 있고,

    연약한 희망의 백일몽일 수도,

    무서운 사회 비판을 띤 반역 정신일 수도 있다.

     

    여하튼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허클베리 핀이 흑인 노예 짐과 함께 문명세계에서 도망치고 있으며,

    공포의 어머니 같은 늙은 미스 왓슨(짐의 주인)과 훌륭한 어머니의 상징인 점잖은 더글러스 과부댁,

    숙모인 샐리 펠프스의 종교와 사회적 계율에서 탈출하여 '뗏목을 타고' 떠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뗏목을 타고 있을 때만 헉은 진정한 자유를 맛보고 낙원에의 가능성을 보며,

    어느 강변의 도시의 위선으로 얼룩진 문명도 그에게 낙원의 꿈을 열어주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뗏목만이 희망이며 자유의 모든 것이며 거대한 유토피아의 자그만 해방 영토가 아닐까? ​

     

     

    25시(비르질 게오르규)

    드라이얀은 자신의 친구인 검사에게 말한다.

    '25시라는 제목의 소설을 쓰려고 해.

    이것은 모든 구제의 시도가 무효가 된 시간이야.

    메시아가 온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 시간이지.

    이건 최후의 시간이 아니고 최후의 시간에서도 한 시간 후이니까.

    이것은 서구 사회의 정확한 시간, 다시 말하면 현재의 시간이며 정확한 시간을 뜻하지.' ​

     

    이렇듯 '25시' 안에는

    현대인의 위기와 그 위기를 진단하는 지성인들의 모습과

    그 파멸을 구원하려는 숭고한 목적을 가진 성직자의 이상주의적 꿈의 이야기가

    역사에 희롱당하는 농부 요한 모리츠의 이야기와 함께 슬픈 교향악을 이루며 퍼지고 있다. ​

     

    드라이얀에 의하면 옛날에는 잠수함의 산소를 측정하기 위해 흰토끼를 배 안에 싣고 다녔다고 한다.

    공기가 탁해지면 토끼가 죽는데 그러고 나서 일곱 시간 후면 사람도 위험하게 된다.

    시인은 잠수함 속의 흰토끼처럼 산소의 결핍을 다른 선원들보다 일곱 시간이나 먼저 알아챈다. ​

     

     

    파우스트(요한 볼프강 폰 괴테)

    민중에 널리 전해오던 파우스트 전설은 대략 다음과 같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파우스트는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여 신학 박사가 되었으나

    오만하고 지식욕에 불탄 나머지 신학에만 만족할 수 없어 마술 연구에 몰두하고,

    다시 의학을 배워 의학 박사가 되고,

    또 천문과 수리 등의 학문에까지 손을 대어 우주 궁극의 이치를 모두 알려고 애쓴다.

     

    이 끝없는 지식욕에 사로잡힌 그는 마법으로 악마를 불러내어

    24년간 악마의 도움으로 지상의 모든 지식과 쾌락을 얻는 대신

    그리스도교의 적으로 행동하고, 약속 기간이 되면 혼과 육체를 악마의 손에 맡기겠다는 계약을 맺는다.

     

    이리하여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를 거느리고

    우주의 신비에 뛰어들어 별세계며 지옥을 탐방하는 외에 지상 각처에 출몰하여 마법으로 선량한 사람들을 속인다.

     

    그의 모험은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명부에서 고대 그리스의 전설 속 미녀 헬레네를 불러내어 그녀와 결혼하고 아들 하나를 낳기에 이른다.

     

    파우스트는 그리스도교의 신앙으로 되돌아가기를 열심히 권하는 친구의 충고를 냉정히 물리치고

    더욱 대담한 독신 행위를 계속하며 24년의 세월을 보낸다.

     

    끝내 그의 탄식과 후회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명은 굉음과 더불어 순식간에 끊어지고,

    그의 혼은 지옥에 떨어져 영겁의 벌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