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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과 나눈 이야기

     

     

     

    1992년 봄, 내가 기억하기로는 부활절 무렵이었던 것 같다.

    내 인생에서 아주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신이 여러분과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를 통해서! ​ ​

     

     

    나는 모두에게 말하고 언제나 말한다.

    문제는 내가 누구한테 말하는가가 아니라 누가 내 말에 귀담아듣는가다.

    나는 생각으로도 교류한다.

    생각과 느낌은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지만 같은 것은 아니다.

     

    생각으로 교류할 때 나는 영상을 자주 사용한다.

    그 때문에 교류 도구란 면에서 생각은 단순한 말보다 효과가 크다.

     

    느낌과 생각 외에 나는 체험이라는 전달 수단을 사용하기도 한다.

    체험은 참으로 위대한 전달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느낌도 생각도 체험도 모조리 실패할 때, 나는 말을 쓴다.

    사실 말은 가장 비효율적인 전달자다.

     

    말은 너무나 빈번하게 잘못된 해석이나 오해를 낳곤 한다. ​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말의 본질이 그렇기 때문이다.

    말은 그저 입 밖에 내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느낌과 생각과 체험을 드러내는 소리.

    말은 상징이자 기호고 표시다.

     

    말은 진리가 아니다.

    말은 실체가 아니다.

     

    너희가 뭔가를 이해하고자 할 때 말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너희에게 앎을 주는 것은 체험이다.

     

    물론 너희가 체험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그래서 나는 너희에게 앎의 다른 도구들도 주었다.

     

    느낌과 생각이라는 도구들을.

    그런데 여기서 최고의 역설은 너희가 신의 말은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체험은 아주 하찮게 여긴다는 점이다. ​ ​ ​

     

     

    진실로 신이 존재한다면, 왜 당신은 우리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겁니까?

    나는 너희가 이해하는 어떤 형상이나 모습도 지니고 있지 않기에 그건 불가능하다.

    내가 너희가 이해할 수 있는 형상이나 모습을 취할 수는 있으나, 그러면 누구나 하나같이 자기네가 본 것이 신의 많은 형상이나 모습들 중 하나가 아니라, 유일한 형상이자 모습이라 여길 것이다.

     

    사람들은 내가, 자기네가 보지 못하는 어떤 존재가 아니라, 자기네가 보는 대로의 존재인 줄 믿는다.

    하지만 나는 어느 특정 순간에 화한 무엇이 아니라, 위대한 보이지 않음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내가 아닌 것이 나다.

    나는 없음에서 나오고 항상 그것으로 되돌아간다. ​

     

    그럼에도 내가 특정 형상, 곧 사람들이 나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여기는 형상으로 나타나면, 사람들은 나를 영원히 그 형상으로 규정한다.

     

    그래서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다른 형상으로 나타나야 했다면, 앞서 나를 본 사람들은 그들에게, 그것은 내가 아니라고 말한다.

     

    자기네에게 나타났던 모습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고, 똑같은 것을 말하지도 않았으니, 어찌 그것이 나일 수 있겠냐고 하면서 말이다. ​ ​

     

     

    올바른 기도는 간청의 기도가 아니라, 감사의 기도다.

    너희가 현실에서 체험하기로 선택한 것에 대해 미리 신에게 감사할 때, 사실상 너희는 그것이 ...... 실제로 있음을 인정하는 셈이다.

     

    따라서 감사는 신에게 보내는 가장 강력한 진술,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내가 먼저 대답해 주는, 하나의 확약이다.

    그러므로 결코 간청하지 마라.

    감사하라. ​ ​ ​

     

     

    너희는 나름의 방식으로 너희의 삶을 살고 있고, 나는 그것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신이 너희가 하는 일에 여러모로 마음 쓰리라는 생각은 너희가 빠져 있는 크나큰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말을 들으면 무척 서운하겠지만, 나는 너희가 뭘 하든 마음 쓰지 않는다.

     

    하지만 너희라고 아이들을 밖에 나가 놀게 할 때 아이들이 뭘 하는지에 신경을 쓰는가?

    그 애들이 술래잡기를 하든 숨바꼭질을 하든 흉내 놀이를 하든, 너희에게 그것이 중요한 문제일까? ​

     

    너희는 아이들을 편안하고 만사가 순조로워 보이는 환경 속에 놓아두었다.

    아이들이 완벽하게 안전하다는 걸 너희가 이미 알고 있으니,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물론 너희는 늘 애들이 다치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그리고 애들이 다친다면 당장 달려가서 애들을 도와주고 치료해 주며, 다시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주고, 다음날 다시 나가 놀게 해줄 것이다.

    이튿날에도 애들이 숨바꼭질을 택하든 흉내 놀이를 택하든 너희는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

     

    신은 의도대로 결과를 만들어내기에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너희는 이것을 믿지 못하거나 믿지 않으려 한다.

     

    그리하여 너희는 신의 의지를 훼방할 방법을 찾아내려고, 신과 맞먹는 힘을 너희의 상상 속에서 창조해 내야 했다.

    이렇게 해서 '악마'라 부르는 존재가 너희의 신화 속에 탄생했다.

     

    너희는 신이 이 존재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상상까지 해왔다.

    마지막으로 너희는 신이 이 전쟁에서 실제로 질 수도 있다고 상상해왔다. ​ ​

     

     

    너희는 환상 속에서 살고 있으며, 두려움에 시달린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그 가장 깊은 단계에서 두 가지 감정 중 어느 하나, 곧 두려움이나 사랑에서 시작된다.

    사실 영혼의 언어 속에서 단 두 가지 감정, 단 두 마디 말만이 존재한다.

     

    이 둘은 내가 우주와, 너희가 오늘날 알고 있는 바대로의 세상을 만들었을 때 함께 창조했던 위대한 양극성의 두 극단이다. ​

    너희는 가장 잘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고, 가장 강한 자가 승리하며, 가장 영리한 자가 성공한다고 들어왔다.

     

    너희는 지고한 사랑의 영광에 대해서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그리하여 너희는 이런저런 방식으로 가장 잘 적응하고 가장 강하고 가장 영리한 사람이 되려고 발버둥 치며, 어떤 상황이든 자신이 이에 못 미치는 것처럼 여겨지면 가진 걸 잃게 될까 봐 두려워한다.

     

    못 미치는 건 곧 잃는 것이라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

    당연히 너희는 두려움이 뒷받침된 행동을 선택한다.

    너희가 이제까지 배워온 게 바로 그런 것이기에,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것은 이렇다.

     

    너희가 사랑이 뒷받침된 행동을 선택할 때 너희는 생존 이상을 하게 될 것이고, 이기는 것 이상을 하게 될 것이며, 성공 이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럴 때 너희는 자신이 참으로 누구인지, 또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깨닫는 충만한 영광을 체험할 것이다. ​

    이렇게 하려면 너희는 악의는 없으나 잘못 알고 있는 너희 속세 선생들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다른 원천에서 나온 지혜를 지닌 사람들의 가르침을 들어야 한다. ​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너희 중에도 그런 스승들은 많다.

    너희에게 이런 진리들을 보여주고 가르치고 이끌어주고 깨우쳐 주는 사람들 없이, 내가 너희를 그냥 버려두지는 않을 것이기에, 그러나 깨우쳐주는 자들 가운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는 너희 외부에 있는 어떤 사람이 아니라 바로 너희 내면의 소리다. ​ ​ ​

     

     

    왜 세상에는 항상 문젯거리가 존재할까요?

    나는 너희가 원하는 걸 원한다. 너희가 진실로 굶주림의 종식을 원하는 바로 그날, 더 이상 굶주림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주었다.

     

    너희는 그런 선택을 내릴 수 있는 모든 도구를 갖고 있다.

    너희는 그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너희가 그것을 선택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인류는 내일이면 이 세상의 굶주림을 끝장낼 수 있다.

     

    그러나 너희는 그렇게 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

    너희는 날마다. 40,000명이 굶어 죽어야 할 만한 충분한 이유들이 있다고 주장한다.

     

    충분한 이유란 것 없다.

    그럼에도 너희는 날마다 40,000명씩이 굶어 죽어가는 걸 막을 아무 방도도 없다고 말하는

     

    그 순간에, 너희는 날마다 50,000명씩을 세상에 데려와 새 삶을 시작하게 한다.

    그리고 너희는 이것을 사랑이라 부른다.

     

    너희는 이것을 신의 계획이라 부른다.

    따뜻한 연민은 말한 것도 없고, 논리나 이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런 계획을. ​ ​

     

     

    감각은 영혼의 언어이고, 네 영혼은 네 진실이다.

    내재된 가장 심원한 비밀은 삶이 발견의 과정이 아니라 창조의 과정이라는 데 있다.

    너희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을 새롭게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누구인지' 찾아내려 애쓰지 말고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지' 판단하라. ​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보라.

     

    "나"라는 말은 창조의 엔진에 시동을 걸어주는 열쇠다.

    "나는"이라는 단어는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그 말들은 우주에 보내는 진술이며, 명령이다.

    이제 "나"라는 말 뒤에 따라오는 건 뭐든지 현실에 그대로 실현되는 경향이 있다. ​

     

    그러므로 "나"+"성공을 원한다"라는 성공이 모자라는 너를 만들어주고, "나"+"돈을 원한다"라는 돈이 모자라는 너를 만들어낸다.

     

    생각과 말에는 창조력이 있기에 다른 결과는 나올 수 없다.

    행동 역시 마찬가지다.

     

    만일 네가 성공과 돈을 원한다는 식으로 말하고 행동한다면, 네 생각과 말과 행동은 서로 일치되고, 따라서 너는 확실히 이것들이 모자라는 체험을 하게 된다. ​ ​

     

     

    너희가 학교에서 가르치는 건 역사가 아니라 정치다.

    역사란 건 본래 실제 일어난 일에 대한 정확하고 완전한 설명이다.

    반면에 정치는 실제 일어난 일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일어난 일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각이기 마련이다.

     

    역사는 밝히지만, 정치는 정당화한다.

    역사는 벗기고 모든 것을 말하지만, 정치는 덮고 오직 한 면만을 말한다.

     

    정치가들은 사실대로 쓰인 역사를 싫어한다.

    그리고 사실대로 쓰인 역사 역시 정치가들을 그다지 좋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

     

    하지만 너희가 지금 입고 있는 건 '벌거벗은 임금님의 새 옷'에 지나지 않으니, 결국 너희 아이들은 너희를 샅샅이 보고 말 것이다. 비판적으로 생각하도록 배운 아이들은 너희 역사를 살펴보고는 이렇게 말할 테지,

     

    "맙소사, 우리 부모와 어른들은 얼마나 자신들을 속여왔는가!"

    너희는 이런 일을 참을 수 없다. ​

     

    그래서 너희는 그들 사이에서 그런 싹이 트지 못하게 잘라버린다.

    너희는 아이들에게 기본의 기본이 되는 사실조차 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너희는 아이들이 너희가 쥐여주는 사실들만 갖길 원한다. ​

    왜 너희는 아이들에게 운동과 음악과 예술의 기쁨과 옛날이야기의 신비한 삶의 경이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는가?

     

    왜 너희는 아이들에게 부자연스러운 것을 집어넣는 대신에, 그들에게서 발견되는 자연스러운 것을 끄집어내려 하지 않는가? ​

     

    어째서 너희는 규칙과, 기억된 제도와, 그 방식들로는 전혀 진화할 수 없음이 분명해졌는데도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사회적 결론들 대신에, 아이들이 그들 나름의 직관과 그들 내면 깊은 곳의 앎이라는 도구들을 써서 논리와 비판적 사고와 문제 해결력과 창작을 배우도록 놔두지 않는가? ​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제가 아니라 개념들을 가르쳐라.

    다음 세 가지 '핵심 개념들'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교육과정을 고안하라.

     

    자각 awareness

    정직 honesty

    책임 responsibility ​ ​

     

     

    너희 법률들이 반영하는 건 권력이 어디에 있는가다.

    삼은 너희 행성에서 가장 쓸모 많고, 가장 강하고, 가장 질기며, 가장 오래가는 물질 중 하나일 수 있다.

    너희는 그보다 더 좋은 섬유를 옷감으로 생산할 수 없으며, 그보다 더 강한 재질을 밧줄로 생산할 수 없고, 그보다 더 쉽게 재배하고 쉽게 수확할 수 있는 원료를 펄프로 생산할 수 없다.

     

    너희는 전 세계 삼림이 점점 줄고 있다는 기사가 실린 신문을 보려고 해마다 수십만 그루의 나무를 자른다.

    삼이라면 한 그루의 나무도 자르지 않고, 너희에게 수백만 부의 신문들을 제공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사실 그것은 10분의 1밖에 안 되는 비용으로 그 많은 자원들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런데 이 기적 같은 식물, 덧붙이면 놀라운 약효까지 지닌 이 기적 같은 식물을 재배하도록 허용한다면 누군가가 손해를 본다.

     

    바로 이것이 족쇄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너희 나라에서 대마초가 불법인 이유다. ​ ​

     

     

    모든 공격은 도와달라는 외침이다.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해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 덧붙이면 너희 정부들까지 포함하여 -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잘못 자리 잡은 생각 때문에 그런 일을 한다. ​

     

    나는 이미 이 책에서 이 문제에 대한 수준 높은 해결책이 어떤 것인지 대강 설명했다.

    그냥 아무것도 원하지 마라.

     

    선호는 갖되, 욕구는 절대 갖지 마라.

    그러나 이것은 대단히 높은 수준의 존재 상태다.

    그것은 선각자들의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