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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애니멀

 

 

 

이 책은 해럴드와 에리카라는 두 주인공으로 소설 형식의 스토리와 심리학 기반의 근저와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저자 데이비드 브룩스는 저널리스트로 “인간은 합리적 동물”이라는 인간 본성관에 반론을 들고 개인의 행복과 성취를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본래 감정 차원의 일이다.

누구를 사랑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낯선 의사결정 방식이 아니다.

평범한 삶 속에 있는 낭만적인 간주곡일 뿐이다.

 

누구를 사랑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어떤 음식을 주문할 것인가부터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인생 전반에 걸쳐 행하는 수많은 판단의 집약된 버전일 뿐이다. ​

 

 

거울뉴런 이론

사람의 뇌에 있는 뉴런은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정신적인 패턴을 자동으로 재연한다는 것이다.

거울 뉴런 이론이 너무 부풀러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람의 뇌는 심도 있는 모방을 자동으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또 이런 방식으로 공간을 초월해서 정신적인 여러 과정을 공유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이다.

 

거울 뉴런에 대한 과학이 흠이 많다고 하더라도 이 이론은 우리가 날마다 목격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유용한 도구임에는 분명하다.

부모와 자식 관계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

 

 

나는 호랑이다

아무리 싸구려 전자계산기라도 제곱근은 계산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호랑이다"라는 문장은 단순한 기계는 절대로 만들어 낼 수 없는 상상의 구조물이다.

 

단순한 기계는 나라는 어린아이와 호랑이라는 무시무시한 동물을 하나로 묶어낼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의 뇌는 이러한 복잡한 과업을 무의식적으로 너무나 쉽게 해낸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다. ​

 

 

무의식적인 모델

보울비 이전에는, 심지어 보울비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은 개인적인 의식적인 선택에 초점을 맞추었다.

사람은 단순한 세상을 바라보고 이 세상에 대한 복잡하고 어려운 결정을 내린다는 게 가설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보울비는 우리 머릿속에 있는 무의식적인 모델들, 가장 먼저 지각을 결정하는 주체에 초점을 맞추었다.

보울비의 제자 매리에인스워스는 아이가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이라도 부모에게서 떨어져 혼자 힘으로 세상을 탐험해야 하는 때가 바로 '결정적인 순간'임을 알아냈다.

 

이른바 낯선 상황 검사에서 9-18개월 된 아기와 아기 엄마를 탐험 정신을 유발하는 장난감들로 가득 찬 방에 들어가게 한다.

 

그리고 낯선 사람을 방에 들여보내고 엄마가 낯선 사람에게 아기를 맡기고 방에서 나오고 잠시 후 엄마가 다시 방에 들어간다.

 

이 모든 상황에서 아기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면밀하게 관찰한다. ​

 

 

옥시토신

부모가 아기와 눈높이를 맞출 때 아기의 뇌에서는 옥시토신이 분출된다.

몇몇 학자들은 자신이 주장하는 이론의 연장선에서 옥시토신을 친화신경펩티드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호르몬은 친밀한 사회적 유대감을 느낄 때 분출된다.

옥시토신은 강력한 만족감을 준다. ​

 

 

애착 유형

어린 시절 애착 유형이 인생을 송두리째 결정한다고 말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회복력이 매우 강해서 초기의 잘못된 부분을 극복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 엄마와 애착관계를 변변히 형성하지 못한 어린이라 하더라도 훌륭한 교사나 이모 혹은 고모를 만나서 다른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는 방법을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 ​

 

 

책이 바뀌지 않았다면 내가 바뀐 것이다.

여태까지 읽은 책을 다시 읽으라고 하자 헤럴드는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그런데 다시 읽으니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깜짝 놀랐다.

 

지난번에 파악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요지와 주장이 있다는 걸 알았다.

지난번에 밑줄 친 문장이 새로 읽을 때는 전혀 핵심적인 내용이 아니었다.

 

지난번에 해 놓은 메모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수준이 낮았다.

책이 바뀌지 않았다면 헤럴드가 바뀐 것이다. ​

 

 

전문가

전문가는 어떤 주제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적게 생각한다.

전문가는 가능성 있는 결과를 계산할 필요가 없다.

전문가는 일이 어떻게 돌아갈지 충분히 예측한다. ​

 

 

진정한 천재성

에리카는 자기 학교가 싫다고 자신에게 주입시켰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학교가 싫지 않았다.

또 미워하지도 않는 이웃을 미워한다고 자기 최면을 걸었다.

바로 여기에 진정한 천재성이 놓여 있었다.

 

에리카는 자기 스스로는 자기 자신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에리카는 한 가지 결정을 할 수 있었다.

환경을 바꾸는 것이었다.

 

 

민들레와 난초

쉽게 잘 놀라는 사람은 인생을 살면서 걱정과 공포를 더 많이 경험한다.

어떤 학자들은 아이들을 민들레와 난초로 구분하기도 한다.

 

민들레는 감정의 기복이 심하지 않다.

그러나 난초는 쉽게 변한다.

좋은 조건에서는 활짝 피어나지만 그렇지 않은 조건에서는 금방 시들어 버린다. ​

 

 

묻는 사람과 추측하는 사람

작가 안드레아돈데리는 세상은 묻는 사람과 추측하는 사람으로 나뉜다고 주장한다.

묻는 사람은 요청할 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으며 거절당하면서도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으므로 언제나 기꺼이 거절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

 

추측하는 사람은 남에게 부탁하는 것을 싫어하며 다른 사람의 부탁을 거절할 때 죄의식을 느낀다.

추측하는 문화에서는 긍정의 대답을 확신하지 않는 한 어떤 요청도 입 밖에 내지 않는다.

 

이 문화에서는 부탁을 받을 때 결코 직접적으로 싫다고 말하지 않고 그럴듯한 핑계를 댄다.

어떤 부탁이든 간에 부탁을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정서적으로 사회적인 위기를 느낀다. ​

 

 

플라톤

사람의 영혼은 이성, 정신, 욕망이라는 세 부분으로 나뉜다고 플라톤은 믿었다.

이성은 진실을 추구하며 최고의 완벽한 인간이 되기를 원한다.

 

정신은 인식과 영광을 추구하며 욕망은 쾌락을 추구한다.

플라톤에게 이성은 잘못 짝지워진 야생마 두 마리를 전차에 묶고 몰아야 하는 전사와도 같았다.

 

이와 관련해서 플라톤은 다음과 같이 썼다.

만일 더 나은 정신의 요소.

즉, 질서와 철학을 이끄는 요소가 강하면 우리는 자신의 주인이 되어 행복하고 조화롭게 살 수 있다.

 

이런 틀에 따르자면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 이성은 커다란 진보를 이루었다.

그러나 로마가 멸망한 뒤에 열정이 자기주장을 하며 일어났다.

 

유럽은 암흑에 빠졌다.

교육은 억압되고 과학은 잠들고 미신이 융성했다.

 

르네상스시대 과학과 회계의 발달과 함께 다시 사정이 바뀌었다.

17세기 과학자와 기술자들은 새로운 기계를 창조했고 사회를 인식하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

 

위대한 연구자들이 자기가 사는 세계를 해부하고 이해하기 시작했다.

"세계는 하나의 기계이다"라는 은유가 "세계는 하나의 살아 있는 유기체이다"라는 은유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사회를 수백만 개의 부품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시계로 바라보기도 했다.

그리고 신은 성스러운 시계공이자 매우 합리적인 우주의 창조자였다. ​

 

 

과학적인 방법

프란시스 베이컨이나 르네데카르트와 같은 위대한 인물은 과학적인 방법이라는 새로운 사고방식이 등장하는데 일조했다.

데카르트는 인간을 완전히 새롭게 이해하고자 했다.

 

무엇이 진실하고 확실한지 알아내기 위해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시작해 차근차근 논리적이고 의식적으로 모든 명제를 고찰했다.

 

그는 논리적 기초 위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를 새로 구성했다.

이 과학적인 시대에 정신은 베이컨이 주장했듯이 알아서 자기 길을 찾아가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고 모든 걸음마다 안내를 받아야 했다.

 

이때 필요한 것은 확실한 계획이었고 믿을 만한 새로운 방법론이었다.

그는 철학자이자 과학자로서 새로운 사고방식을 위해 마음속에서 편견과 습관과 선입견을 몰아내야 했다.

 

연구하는 대상과 냉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했다.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개별적인 요소로 철저하게 분해해야 했다.

 

그다음 가장 단순한 요소에서부터 시작해 단계를 밟아서 점차 복잡한 것으로 의식적이고도 질서정연하게 나아가야 했다.

일상 언어가 갖는 모호함과 혼돈을 배제하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용어를 개발해야 했다.

 

인간 행동에 대한 법칙과도 같은 일반화. 즉, 확실성과 진실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였다.

과학적인 방법론은 한때 추측과 직관만이 존재하던 곳에 엄밀함을 불러들였다.

 

이렇게 해서 물리학, 화학, 생물학 그 밖의 자연과학 영역에서 나타난 결과는 경이로울 정도다. ​

 

 

합리주의

합리적인 기법은 사회과학에도 적용되었다.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은 위대한 백과사전을 만들어 냈다.

 

백과사전에서 세사르슈스노뒤마르세는 다음과 같이 천명했다.

"이성과 철학의 관계는 자비와 기독교인의 관계와 같다. 자비가 기독교인을 행동으로 이끌 듯이 이성은 철학자를 이끈다."

 

여러 세기가 흐르는 동안 사회과학자들은 인간 본성을 탐구하는 과학을 창조하려고 노력했다.

합리주의는 19세기와 20세기 동안 엄청난 특권을 획득했다.

 

하지만 편견이 있었고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합리주의는 문제를 세부 요소로 쪼개기 때문에 환원주의였고 창발적 체계를 알지 못하고 상상도 하지 못한다.

 

심리학자 가이클랙스턴이 저서 '비틀린 마음'에서 썼듯이 창발적체계는 관찰보다 설명을 높이 친다.

이해하는 것보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

유희적이라기보다는 목적의식적이다.

단어나 숫자로 표기될 수 있는 지식을 그렇지 않은 지식보다 더 높이 친다.

전체 맥락 속에서 적용될 수 있는 법칙이나 원칙을 추구하며 구체적 의미나 맥락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

 

 

합리주의적 방법론

합리주의적 방법론은 일련의 가설을 기초로 해서 형성되었다.

사회과학자는 열정이나 무의식적인 편견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에서 사회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가정한다.

 

또 이성을 완전하게 혹은 적어도 거의 완전하게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또 이성은 감정이나 욕망보다 더 강력하며 이런 것과 분리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또 인식이란 깨끗한 렌즈이며 이 렌즈를 통해 세상을 직접 바라볼 수 있어 믿을 만하다고 가정한다.

또 인간의 행동은 물리학 법칙과 비슷한 법칙에 순응한다고 가정한다.

 

이렇게 보자면 기업이나 사회, 국가, 우주는 모두 거대한 기계이며 원인 결과라는 불변의 모형을 통해서 돌아가고 따라서 자연과학은 행동과학이 당연히 복제해야 하는 모델이다. ​

 

 

독단적인 극단론

과학의 혁명은 과학주의로 이어졌다.

언론인 어빙크리스톨은 과학주의는 이성의 상피병이라고 했다.

 

과학주의는 합리적인 탐구 법칙을 받아들여서 이것을 무한대로 늘이며 그 공식에 맞지 않는 것은 모두 배제한다.

지난 수 백 년 동안 일어난 수많은 실수와 재앙은 순수 이성에 대한 지나친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18세기 말 프랑스의 혁명주의자들은 합리적인 토대 위에 세상을 새롭게 시작한다면서 사회를 잔인하게 난도질했다.

사회적 다원주의자들은 "인간 혁명의 완벽한 불변의 법칙을, 최적 자생 존을 확실하게 보장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법칙을 발견했다"라고 상상했다.

 

프레드릭테일러의 영향을 받은 기업주들은 공장노동자를 최대 효율을 내는 톱니바퀴로 개조하려고 시도했다.

20세기에 공산주의자들은 이른바 소비에트적인 새로운 인간을 창조하겠다고 하면서 모든 국가를 완전히 새로 설계하려고 했다.

 

프랑스 건축가 르꼬르뷔지에를 비롯한 도시계획가들은 기존의 주거지를 완전히 쓸어버리고 그 자리에 다차선 고속도로와 성냥갑 같은 주택을 지어 도시를 하나의 합리적인 기계로 바꾸려고 했다.

 

선진국의 과학기술 분야 전문가들은 전 세계 저개발국가를 대상으로 대규모 개발계획을 실행하려고 시도했다.

요컨대 합리주의적 방법론은 수많은 위대한 발견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이것으로 인간 세상을 설명하거나 조직하려 할 때 한 가지 결정적인 한계에 부닥친다.

합리주의적 방법론은 인간의 의식적인 인식을 매우 높이 치면서 무의식적 인식의 영향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는 점이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라이오넬트릴링은 자유로운 상상력에서 이 문제를 진단했다.

정치나 상업이 조직화를 지향할 때 조직에 가장 민감한 정서와 속성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나 상업이 역동적이고 긍정적인 목표를 수행할 때 세계관을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무의식적으로 제한하며 특히 인간 정신의 특성과 관련해서 이론과 원칙을 무의식적으로 개발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정치나 상업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정서와 상상력을 무시하는 쪽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인간의 정신이 가지고 있는 힘에 대한 믿음을 강화하겠다는데만 사로잡혀서 인간 정신에 대한 개념을 압축하고 기계적으로 만들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

 

 

프랑스 계몽주의와 영국 계몽주의

프랑스 계몽주의는 데카르트, 루소, 볼테르, 콩도르세가 이끌었다.

이들은 미신과 봉건주의 세상에 맞선 철학자들로 미신의 세상을 이성의 선명한 빛으로 생생하게 까발리고자 했다.

 

과학혁명에 고무된 이들은 이성의 힘으로 실수를 파악하고 우주적인 진리에 논리적으로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영국 계몽주의자들은 이성의 중요성을 인정했지만 개인의 이성은 한계가 있으며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고 믿었다.

 

데이비드 흄은 이성은 열정의 노예이며 또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

이성은 열정에 복무하는 일 이상을 시도할 수 없다. 프랑스 계몽주의자들은 논리, 과학, 우주적인 법칙을 이야기한 반면 영국 계몽주의자들은 감각과 애정이 가지고 있는 힘을 강조했다.

 

인간의 행동은 무의식적인 1차적 인식에 의해 전체적으로 형태가 결정된다는 생각에 입각해서 인간의 특성을 바라보았다.

에드먼드 버크는 "숭고와 미의 근원을 찾아서"에서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에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인간은 텅 빈 백지로 태어나 빈 부분을 교육으로 채우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 이미 특정한 것에 대한 선호와 애정, 기피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감각과 상상력은 이성적인 이해가 이들과 결합하거나 혹은 배척하기 전에 이미 영혼을 사로잡는다.

프랑스 계몽주의자들은 자율적인 개인들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자발적으로 사회적인 계약을 맺는 인간 특성을 상상했다.

 

반면 영국 계몽주의자들은 사람은 사회적 감각을 갖고 태어나며 이 감각은 의식보다 더 아래 차원에서 작동한다고 강조했다.

 

사람은 타인의 고통과 즐거움에 대해서 태생적으로 공감하는 이른바 동류의식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은 존경받고 싶어 하며 그만한 자격을 갖추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도덕성은 추상적인 법칙에서 추론된 논리가 아니라 반의식적 상태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프랑스 계몽주의자들은 사회와 제도를 언제나 분해해서 다시 조직할 수 있는 기계로 본 반면 영국 계몽주의자들은 하나의 유기체로 보았다.

 

진실이란 개별 사이에 존재하는 연관성 속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게 기본 발상이므로 맥락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추상적인 보편성은 당연히 신뢰할 수 없으며 역사적인 선례가 더 유용하다.

 

영국 계몽주의자들은 변화와 개혁을 뚜렷하게 구분했다.

변화는 제도의 근본적인 성격을 바꾸는 재조직 과정이다.

개혁은 제도의 본질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결함을 보수해서 본질을 생생하게 되살리는 치료 과정이다. ​

 

 

보수 주의와 자유주의

대니얼패트릭모이니헌은 보수주의 중심 가치는 한 사회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문화라고 보는 것이다.

 

자유주의의 중심 가치는 정치가 문화를 변화시킬 수 있고 문화를 정치에서 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

 

 

국가의 진정한 기능은 경쟁의 기회를 더 평등하게 하는 것이지 경쟁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루즈벨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