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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커튼

     

     

    연속성의 인식 ​

    아폴리네르가 칼리그람 다음에 알코올을 썼으리라고는 결코 생각할 수 없었다.

    만약 그런 경우라면 그는 다른 시인이 되었을 것이고 그의 작품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

     

     

    가련한 알론소 키하다(돈키호테)

    돈키호테는 산초에게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가 후대에 모범이 되기 위하여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모습의 인물들을 묘사했다고 설명해 준다.

    그런데 돈키호테 자신은 따라야 할 모범에서 제외된다.

    소설의 인물들은 그들의 미덕 때문에 찬양받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 인물들은 이해받기를 원하는데 이는 완전히 다른 점이다.

     

    서사시의 영웅들은 승리의 순간이나 혹은 패배했다 해도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 위대함을 잃지 않는다.

    왜냐하면 있는 그대로의 인간 삶이 패배라는 사실은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이다.

    삶이라고 부르는 이 피할 수 없는 패배에 직면한 우리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그 패배를 이해하고자 애쓰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소설 기술의 존재 이유가 있다. ​

     

     

    스토리의 독재

    스턴은 20세기 소설 형식의 위대한 혁명가들과 종종 비교된다.

    이는 스턴이 저주받은 시인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맞는 말이다.

    스토리를 사용하지 않는 그의 장엄한 행위로 인하여 대중은 미소 지으며 웃으며 농담하며 스턴을 찬양했다. ​

     

     

    죽음의 아름다움(안나 카레니나)

    자리를 뜨기 삼십 분 전에 그녀는 아름다움이 세계를 떠나는 것을 본다.

    갑자기 그녀는 브론스키와 처음 만난 날 깔려 죽은 사람을 기억해 내고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깨닫는다.

    그녀는 몇 계단을 내려가서 철로 근처에 섰다 화물열차가 다가온다.

    예전에 수영을 하면서 물에 몸을 담그려고 할 때 느꼈던 것과 유사한 감정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 ​

     

     

    키치(kitsch, 저속한 작품)

    키치라는 말은 19세기 중반 뮌헨에서 생겨났으며 위대한 소설의 세기의 저질스러운 실추를 가리 킨다. ​

     

     

    시인과 소설가

    헤겔에 의하면 서정시의 내용은 시인 그 자신이다.

    서정시인은 자신의 내면세계에 언어를 부여한다.

    음악과 시가 그림보다 우위를 점하는 것이 서정성이다.

    서정주의에서 음악은 시보다 훨씬 더 멀리 갈 수 있다.

    왜냐하면 음악은 언어로는 도달할 수 없는 내면세계의 가장 은밀한 움직임들을 포착해 낼 수 있으니까!

     

    오래전부터 나는 젊은 시절은 서정적 시기라고 생각해 왔다.

    한 개인이 거의 전적으로 자기 자신한테 집중하고 있어서 주변 세계를 보지도 이해하지도 명료하게 판단하지도 못하는 시기라는 말이다.

    이러한 가설을 근거로 보자면 미성숙에서 성숙으로의 이행은 서정적 태도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소설가는 자신의 서정 세계의 폐허 위에서 태어난다. ​

     

     

    찢어진 커튼

    실제로 세르반테스가 새로운 소설 기법을 개척했던 것은 바로 선해석의 커튼을 찢어버렸기 때문이다.

    그의 이 파괴적 행위는 소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소설이라면 그 어느 것에서나 반영되고 이어진다.

    이것은 소설이란 예술임을 증명하는 표시이니까!

     

    니체는 16세기에 교회의 타락이 가장 덜한 곳은 독일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바로 그곳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났음을 지적한다.

    오직 타락의 초기에만 타락을 참을 수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카프카 시대의 관료주의는 오늘날과 비교할 때 순진한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았다. ​

     

     

    사람들이 내 알베르틴을 죽였다

    알베르틴은 "프루스트가 사랑했던 한 남자에 의해 영감받은 것이었다"라는 말을 듣고서 이 아름다운 무지의 힘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소용없는 짓이야! 나는 알베르틴을 가장 잊을 수 없는 여자 중 하나라고 생각하려 했으나 소용없는 짓이었다.

    사람들이 그 모델이 남자였다고 내게 은밀히 알려준 이후로는 내 머릿속에 콕 박혀 버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

    한 남성이 나와 알베르틴 사이에 슬그머니 끼어든 이후로 알베르틴의 이미지는 뒤죽박죽이 된다.

    플로베르는 예술가는 자신이 겪어 보지 못한 후대의 사람들도 믿게 만들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

     

     

    행위

    헤겔은 일리아드를 통해서 다음과 같이 입증한다.

    아가멤논이 왕 중에서 서열이 가장 높은데도 다른 왕들과 왕자들은 아가멤논 주변에 자유롭게 모였고 아킬레우스처럼 자유롭게 전쟁터를 떠날 수 있었다.

    백성들 역시 어떠한 법률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개별적으로 받은 자극, 영예에 대한 감각, 존경 가장 강한 자 앞에서 느끼는 겸허, 영웅의 용기에 대한 매료 등이 사람들의 행위를 결정했던 것이다. ​

     

     

    슈티프터의 관점에서 본 관료주의

    행정이 확대 확장됨에 따라 점점 많은 관리들이 고용되어야 했고 그들 중에는 필연적으로 고약한 사람들이 있었다.

    따라서 관리들의 고르지 않는 역량 때문에 필요한 작업들이 변형되거나 축소되지 않고 잘 수행되도록 하는 시스템 개발이 시급했다.

     

    라자흐가 계속했다.

    내 생각을 분명히 하자면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좋은 것을 나쁜 것으로 교체하는 부품 교환이 있을지라도 제대로 작동하는 이상적인 시계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네.

    그런 시계는 물론 상상할 수도 없지. 하지만 행정은 정확히 이런 형태 아래서만 존재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겪은 변화에 비추어 사라져 버리거나 해야 하지.

     

    따라서 관리는 자기가 담당하는 문제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없다.

    그는 옆 사무실에서 어떤 일이 진행되는지도 모르는 채 심지어는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다양한 작업들을 열성적으로 수행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