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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자존감
자존감은 감정적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이성적으로는 스스로 결정하고 자신의 결정을 존중하는 능력이다.
당신이 사랑받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은 당신 잘못이 아니다.
시험을 못 봤다고 해서 나쁜 학생이 아닌 것처럼.
자존감의 가장 기본적인 정의는 '자신을 어떻게 평가는가?'이다
성장 소설에는 어김없이 사랑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유가 뭘까?
사춘기가 성욕이 가장 왕성할 때라서가 아니다.
성장은 자존감을 획득하는 과정이고, 자존감을 갖추면 사랑부터 찾기 때문이다.
반대로 자존감이 무너지면 사랑에 대한 능력부터 의심하게 되어 있다.
세상의 모든 사랑은 관심에서 시작된다.
집이 어딘지, 무엇을 했는지 등 사소한 관심이 번져 존경과 사랑이 싹튼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똑같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참으로 재미있지 않은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능력이 결국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능력에서 시작된다니 말이다.
나를 아는 만큼 사랑 능력도 커진다.
부부 싸움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이 있다.
나는 대한민국의 이혼율을 놓이는 데 이 속담이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부부 싸움은 으레 하는 일, 많이 해도 상관없는 일쯤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말이다.
이 속담에서 중요한 것은 물이 아닌 칼이다.
칼을 들고 여기저기를 베고 있으니 얼마나 위험한가,
칼로 돌이나 나무를 베면 칼끝이 무뎌지기도라도 한다.
그런데 베는 것이 물이라고 한다.
물을 뚫고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해칠 수도 있지 않을까.
사귄 지 1년이 지나도 싸움이 줄어들지 않는다면 각자 자존감을 체크해야 한다.
'우린 싸움도 자주 하지만 화해도 잘해'라고 말하는 커플이 있는데, 결국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다.
격렬하게 싸우고 뒤끝 없이 마무리를 한도 해도 우리의 뇌와 피부는 그 횟수만큼 시들어간다.
싸움에서 이겼다고 해도 문제다.
제압한 상대가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뛰어난 언변과 논리로 남편을 제압한 부인은 '남편은 나보다 논리적이지 않아'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긴 기쁨은 잠시뿐, 논리적이지 않은 남편과 사는 자신에게 만족할 수는 없는 법이다.
진 쪽은 더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커플은 팀이다.
아무리 좋은 팀이라도 불화와 갈등이 있다.
하지만 팀 킬은 가장 어리석다.
자신은 억울하고 속상하겠지만 남의 눈에는 '저 팀은 형편없는 팀'으로 보일 뿐이다.
두려움은 예방주사가 아니다.
부모는 아이가 사랑받는 존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계속 예방주사를 놓는다고 생각한다.
'너 이러면 사람들이 싫어해. 외톨이가 될 거야'라며 핀잔을 준다.
그 순간에는 아이가 두려워해도 그래야 사랑스러워지려고 노력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예방주사가 아니다.
거절이라는 병균이 침입했을 때, 항체가 되어 싸워야 할 자존감을 소진시키기 때문이다.
당당한 사람이 사랑스럽다.
누구나 내면에 문제가 있다.
남들이 알면 놀랄 욕망도 있고, 욕심도, 질투와 시기도 숨어 있다.
자신감이 결여돼 있기도 하고, 기대고 싶은 의존 욕구도 있다.
다만 감추고 있을 뿐이다.
그런 수많은 것들을 뭉뚱그려 이드(id)라고 부른다.
모든 사람들에겐 자아가 있고, 그것을 통제하는 선량한 나 즉 초자아가 있다.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이 초자아라면, 그 반대편에는 이드가 숨 쉬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나 사랑받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이드가 있다.
그러니 자기한테 이드가 있다고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직업이 있다.
직장과 직업은 다르다.
직장은 맘에 들지 않아도 직업은 좋아할 수 있다.
또 직업과 꿈도 다르다.
나는 직업이 의사지만 작가가 되는 꿈을 버린 적이 없다.
무슨 말인가 하면
자기가 하는 일의 가치가 의심스러울 땐 직업, 직장, 꿈을 분리해서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이 세 가지 모두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
왜 감정은 뜻대로 조절하기 어려울까?
실제로 상담을 할 때 '그때 어떤 감정을 느꼈나요?'라는 질문을 하면
'00감을 느꼈어요'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감정은 본능이고 말로 표현하는 건 이성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감정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이 그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기는 어렵다.
본능의 영역에 있는 사람에게 이성의 영역에 있는 답을 요구하니 당연히 설명을 못할밖에,
'말문이 막힌다.'는 말처럼 진짜 힘들 때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
감정에서 어느 정도 빠져나온 다음에야 그 감정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
감정 폭발 후 우울해지는 이유
감정이 만들어지고 행동으로 옮겨지는 과정을 알면 감정을 조절하는데 작은 단초로 삼을 수 있다.
감정이 격앙되면 뇌는 위기를 직감한다.
그러면 공격성 신경전달물질인 아드레날린이 샘솟고, 활동성 물질인 도파민은 본능 중추로 모여든다.
동시에 이성이 뇌의 전두엽은 스위치를 내린다.
이때 뇌는 긴급한 상황임을 인식해 이성보다 생존을 우선시하게 되고,
뇌의 가장 깊은 곳의 본능의 뇌(변연계)가 깨어난다.
뇌의 이런 신호는 곧바로 신체에 전달된다.
'큰일 났어! 지금 주인이 열받았어! 전투를 준비해!' 신호를 받은 신체에서는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호흡도 가빠진다.
이런 신체 변화를 다시 뇌가 감지한다.
뇌는 심장이 빨리 뛰고 숨도 가빠지는 걸로 봐 위기가 온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고 다시 몸에 신호를 전달한다.
이렇게 뇌는 몸을 깨우고 몸은 뇌를 다시 깨우는 과정이 반복된다.
여기서 적절하게 브레이크를 걸지 않으면 몸의 긴장도는 점점 강해지고 최고점에 달하면 펑 하고 터져버린다.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지는 등의 행동화로 분출되는 것이다.
아드레날린이 최고치를 찍고 도파민 활동이 극대화되는 순간이다.
뇌와 몸의 긴장도가 최고점을 찍고 나면 뇌는 급격하게 우울감에 빠져든다.
뇌와 신체가 지나치게 활성화되었기 때문에 휴지기를 갖는 것이다.
인간의 몸은 신비롭다.
그런 극도의 흥분이 계속된다면 인간은 살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뇌는 재빨리 아드레날린 분비를 중단시킨다.
이때 인간은 심한 무기력과 무능감, 자책감을 느낀다.
감정 조절
감정 조절을 못하는 사람들은 억압과 폭발만 반복한다.
반면 감정을 잘 조절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감정을 얼마나 느끼며 어떤 영향을 끼칠지 인식하고 있다.
또한 그 감정이 지금 눈앞의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리고 그때마다 떠올랐던 감정들을 적어보자.
그러면 공통된 감정이 나올 것이다.
만약 세 번 이상 반복된 감정이 있다면 그것과 관련된 사건이나 생각을 적어보자.
나는 그것을 '감정 일기'라고 부른다.
감정 일기를 쓸 때 중요한 것은 마무리다.
무조건 '나는 오늘 이러이러한 감정을 느꼈구나!'로 끝내야 한다.
그러지 않고 ' 왜 이런 감정을 느꼈을까?'로 끝내면
다시 한번 감정을 격화시켜 자기 비난이나 우울감에 빠지기 쉽다.
일부러라도 물음표를 지우고 무조건 감탄사로 끝내자.
사람이 다루기 힘들어하는 세 가지 감정
1. 밀도가 높은 감정인 창피함
2. 밀도가 낮은 감정을 대표하는 공허함
공허함은 그 자체로 부정적 감정은 아니다.
오히려 마음을 비우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나 무념무상을 도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많다.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을 휴식이라고 하듯 감정적으로 지친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있고 싶다'라는 말을 한다.
이처럼 공허함은 생각이 비워졌을 때 따라오는 감정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공허함을 괴롭다고 받아들인다.
상처가 깊어서 모든 것을 잊고 싶었고 정작 자신이 도달하고 싶어 하는 상태가 됐는데 오히려 허무함을 느낀다.
왜일까?
간단하다.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감정이 공허함인 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돈을 벌거나 성과를 내는 것에는 목표를 정해놓지만 감정의 목표는 구체화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무작정 '지금보다 나은 감정이었으면'하고 생각할 뿐이다.
따라서 무의식에서는 공허함을 원했으면서도 진짜 공허함이 느껴지면
자신이 목표했던 감정에 도달한 것을 깨닫지 못한다.
3. 상반되는 감정을 오가는 양가감정
때로는 서로 반대되는 감정이 번갈아 찾아오기도 한다.
이를 양가감정이라고 한다.
사랑하면서도 미워하는 애증의 감정, 먹기 싫으면서도 먹게 되는 감정이 바로 양가감정이다.
양가감정은 연애 고민을 털어놓을 때 쉽게 드러난다.
친구한테 '이 사람과 헤어져야 할까?'라고 조언을 구했을 때
그 친구가 '더 정들기 전에 빨리 헤어져'라고 충고했다고 하자.
그러면 '그래도 어떻게 그래? 내가 언제 또 이만한 남자를 만날 수 있겠어? 못 헤어져'라며 갑자기 태도가 바뀐다.
그래서 '그럼 계속 참으면서 잘 사귀어봐'라고 말하면 힘들다고 징징거린다.
헤어지라고 하면 사랑한다고 하고 사랑하라고 하면 미워죽겠다는 연애사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핵심 감정
개인마다 유난히 자주 분출되는 감정이 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핵심 감정이라고 부른다.
창피함이 핵심 감정인 사람은 유난히 창피함을 자주 느끼고 주변을 심하게 신경 쓴다.
남들이 그저 쳐다봤을 뿐인데 '비웃었다'라고 느끼는 식으로,
'무시당했다'는 감정을 핵심 감정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은 걸핏하면 자괴감이나 억울함을 느낀다.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기도 전에 상대방에게 적개심을 느끼고, 미워하는 마음으로 넘어간다.
자신의 어떤 감정이 핵심 감정인지 알고 있는 게 좋다.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인식부터 해야 한다.
억울함, 분노, 부끄러움 등 핵심 감정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리고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일 수도 있다.
좌절에 불을 댕기는 파국화 반응
파국화 반응이란 한마디로 '이젠 다 끝났어'라는 반응이다.
조금만 자극을 받아도 죽음이나 부도, 파산 같은 비극적 상황을 떠올리는 증세로,
더 이상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는 생각이 채워지며 이성이 마비된다.
제일 먼저 거칠 과정은 '받아들이기'다.
우선 '나'는 그동안 미리 좌절하는 습관 때문에 고생했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무엇을 진정으로 두려워해왔는지 받아들이자.
지금부터 내가 진짜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생각해 보자.
그러다 보면 궁극적으로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럼 각자의 파국화에 대책을 세울 수 있다.
매력을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할지,
돈을 더 버는 게 필요한지,
건강관리를 해야 하는지 등 각자의 좌절 요인에 대해 대책을 고안해낼 수 있다.
대책이 없는 경우라면? 그럴 땐 '어쩔 수 없지 뭐'하며 단념이라도 할 수 있다.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일'을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은 섣불리 희망을 가지지 않으려 하는 사람이 있다.
좋은 사람일 수는 있지만 나는 나중에 실망하더라도 일단은 희망을 품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열등감
열등감이라는 감정은 세 가지 생각에 연결돼 있다.
첫 번째는 자신에게 부족한 면이 있다는 생각이다.
두 번째는 자기에게 부족한 점을 남들은 다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세 번째는 앞서와 같은 이유로 큰 피해를 본다는 생각이다.
열등감은 이처럼 복잡한 감정이다.
무능감, 자격지심, 피해의식이 섞여 있다 보니 덩어리가 크다.
열등감이라는 덩어리는 잔뜩 부푼 풍선과도 같아, 눌리면 오래 못 버티고 터져버린다.
열등감을 근본적으로 버리려면 사람이든 무엇이든 우월함과 열등함, 좋고 나쁨으로 구분하는 습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자와 장자의 철학이 이를 강조한다.
이들은 세상을 쓸모나 귀함으로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려준다.
장자 이야기 가운데 쓸모없는 나무에 관한 것이 있다.
집 짓기에 좋은 나무는 찾는 사람이 많아 오래 크지 못한다.
하지만 쓸모없는 나무는 아무도 베어 갈 생각을 하지 않으니 걱정이 없다.
쓸모 있는 나무는 잘난 체를 하다가 일찍 베어지지만,
그렇지 않은 나무는 오래 살아남아서 동네 수호신이 되고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기도 한다.
급소를 보호하는 방어기제
마음의 급소가 노출되지 않고 아픔으로 이어지지 않게 보호하는 방식을 '방어기제'라고 부른다.
심리학자들은 다양한 방어기제가 있다고 밝혔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신 포도'얘기는 '합리화'라는 방어기제의 대표적인 예로 통한다.
포도가 시어서 안 먹는 거라며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 이것이 여우의 방어기제다.
비난을 당할 때는 자신이 비난당하는 상황임을 빨리 알아차려야 한다.
왜 그래야 할까? 비난은 우리 인생에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눈물 쏙 빠지게 혼나고 난 뒤에 열정과 승부욕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건 울면서 감정이 배출되어 생기는 '정화'의 효과이지 비난의 효과가 아니다.
자신을 사랑하기
우리 마음속에는 '나'가 세 명 있다.
첫째는 '자존감 낮은 나',
두 번째는 자존감 낮은 나를 '다그치는 나',
세 번째는 자존감 낮은 나를 '사랑하는 나', 이렇게 각기 다른 내가 존재한다.
그동안 '자존감 낮은 나'와 '다그치는 나' 둘이서 싸움을 벌여왔다.
보통 낮에는 '자존감 낮은 나'가 활동하고,
밤에는 '다그치는 나'가 활동한다.
자존감을 낮춘 채로 일하고, 공부하고, 사람을 만난다.
그러고서 밤이 되면 '다그치는 나'가 깨어난다.
'넌 왜 말을 그렇게 하나? 왜 그렇게 밖에 행동을 못하나?'라며 비난한다.
'자존감 낮은 나'는 점점 위축된다.
그래서 점점 더 자존감이 낮아진다.
이 둘의 싸움이 반복되는 동안 '사랑하는 나'는 점점 설자리를 잃었다.
우리가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랑하는 나'가 점점 소멸되었기 때문이다.
힘을 잃고 의식 저편으로 사라졌다.
어느새 '다그치는 나'는 우리를 독점했다.
문제는 방어벽이다.
'다그치는 나'가 단단히 걸어놓은 빗장 때문에 '자존감이 낮은 나'는 갇혀 있다.
그래서 '사랑하는 나'가 보내는 메시지를 받지 못한다.
그 메시지만 들으면 '자존감이 낮은 나'는 성장할 수 있다.
강해지고 현명해져서 성벽을 뚫을 수도 있다.
성숙한 뇌 회로는 융통성이 있다.
가령, 발표하기 전에 심장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흐르더라도 주눅 들지 않을 수 있다.
'사랑하는 나'가 성벽을 뚫고 등장해서 메시지를 전한다면 말이다.
'괜찮아! 누구나 발표하기 전에는 떨어, 게다가 청중의 반 이상은 다 졸고 있다고,
너는 그저 네가 준비한 PPT를 줄줄 읽기만 해도 돼.
네 목소리가 떨려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이렇게 위안을 주면 된다. '괜찮아,
누구나 그래! 최선을 다했잖아, 지금도 충분히 멋져', '사랑해, 무슨 일이 있어도 네가 사랑스럽다는 걸 잊지 마'
등의 얘기를 우리 뇌가 듣고 싶어 한다.
'사랑하는 나'가 보내는 메시지를 들으려면,
'다그치는 나'가 쳐놓은 장벽을 헐겁게 만들어 놓아야 한다.
뇌를 행복하게 만드는 세 가지 행동
걸어라,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처럼
표정을 지어라, 나를 사랑하는 듯이
혼잣말을 하라.
걷기, 표정 짓기, 혼잣말하기, 이 세 가지를 염두해 두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