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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문학의 숲을 거닐다

     

     

     

    문학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가?

    지난 수시 입학 전형 때 어느 학생에게

    ‘문학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가? ’ 라고 질문한 적이 있었다.

     

    잠깐 생각하더니 그 학생은

    ‘ 문학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 라고 답했다.

     

    그 어느 두꺼운 문학 이론 책보다 더 마음에 와닿는 말이었다. ​

     

     

    영희에게 브루닉 신부가

    아직 우리나라에서 신체장애에 대한 사회의식이 전혀 없던 70년대 초반,

    내가 대학에 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초등학교 졸업 후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도 너무나 힘들었으니,

    대학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다행히도 내 학교 성적은 좋았고,

    나는 꼭 대학에 가고 싶었다.

     

    내가 고3이 되자 아버지는 여러 대학을 찾아다니시며 입학시험을 보게 해 달라고 구걸하듯 사정하셨지만,

    학교 측은 어차피 합격해도 장애인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로 빈번히 거절했다.

     

    아버지는 당시 서강대학교 영문과 과장님이셨던 브루닉 신부님을 찾아가

    제발 시험만이라도 보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하셨다.

     

    신부님은 너무나 의아하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말씀하셨다.

    ‘무슨 그런 이상한 질문이 있습니까? 시험을 머리로 보지 다리로 보나요?

    장애인이라고 해서 시험 보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라고 반문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두고두고 그때 일을 말씀하셨다.

    '마치 갑자기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기쁜 바보가 어디 있겠느냐'라고...

     

     

    애지 욕기생(愛之 欲其生)

    내가 이제껏 본 사랑에 대한 말 중 압권은 ‘논어(12권 10장)에 나오는 '애지 욕기생',

    즉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게끔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 단순하지만 사랑의 모든 것을 품고 있는 말이다.

     

    여기서 '산다'는 것은 물론 사람답게 제대로 평화와 행복을 누리는 삶을 의미하지만,

    생명을 지키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사랑하는 일은 남의 생명을 지켜 주는 일이고,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내 생명을 지키는 일이 기본 조건이다.

     

    사는 게 힘들다고, 왜 날 못살게 구느냐고 그렇게 보란 듯이 죽어 버리면,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 채 남아 있는 사람들이 사랑할 몫도 조금씩 앗아가는 것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인물의 유언

    내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작중 인물의 유언은 헨리 제임스의 '여인의 초상'에 나온다.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삶을 꿈꾸던 이자벨은

    결국 고통을 통해서 자신의 결정에 책임지고 사랑을 줄 줄 아는 성숙한 여인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랠프는 자신이 유산을 나누어 준 것이 화근이 되어 이자벨이 불행해진 데 대해 통한을 느낀다.

    죽어 가는 그에게서 진정한 사랑을 느끼고 그를 위해 대신 죽을 수 있다고 흐느끼는 이자벨에게 랠프는 말한다. ​

     

    '이자벨. 삶이 더 좋은 거야.

    왜냐하면 삶에는 사랑이 있기 때문에.

    죽음은 좋은 거지만 사랑이 없어.

    고통은 결국 사라져.

    그러나 사랑은 남지.

    그걸 모르고 왜 우리가 그렇게 고통스럽게 살아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삶에는 너무나 많은 것이 있고.

    그리고 너는 아직 젊어...' ​

     

     

    시와 사랑의 강

    문득 지난 입시전형 면접 때 만난 한 여학생이 기억났다.

    영어 문제 중 하나가 기계문명의 발달과 인간과의 관계에 관한 것이었다.

     

    '인간의 역사에서 기계문명이 지대한 공헌을 했으나 현재에는 오히려 인간이 기계문명에 종속되어 있다'는 논지였다.

    밖에서 10분 동안 지문을 읽은 학생들은 면접실로 들어와 교수들의 질문에 답하게끔 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영문의 주제 파악이나 해석에 관한 질문에 별 어려움 없이 잘 대답했다.

     

    그러자 옆의 선생님이 문득 어느 여학생에게 질문하셨다.

    '이렇게 모든 것을 기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왜 문학을 하려고 하지? 과학과 문학이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기계도 결국은 사람이 만드는 것입니다.' 여학생이 답했다.

    '기계를 만드는 사람도, 소설을 쓰는 사람도 결국 인간이기 때문에

    공유하는 마음이 있고 물리적 가치를 떠나 영혼적 가치를 추구하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면접용' 답치고는 참으로 멋진 답이었다.

     

    조금 비약하자면, 그것은 우리가 흔히 시성이라고 부르는 타고의 말과도 닮은 점이 있다. ​

    타고로는 아인슈타인에 대해 언급하면서

    '내게 있어 과학과 예술은 둘 다 인간의 생물학적 필요를 떠나 궁극적 가치를 지닌 우리의 영혼의 표현이다'

    라고 말한 바 있다.

     

    서로 존경의 마음을 표하던 타고르와 아인슈타인은 1930년 여름 독일에서 만난다.

    아인슈타인의 인문학적 지식과 재능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그가 '이제껏 내 길을 밝혀주고 내가 계속해서 삶을 기쁘게 대면할 수 있는 새로운 용기를 준 세 가지 이상은

    친절과 아름다움과 진리였다' 라고 한 말은 특히 유명하다.

     

    그런데 더욱 인상 깊은 것은 두 사람이 만나기 전 아인슈타인이 타고르에 대해 쓴 글이다. ​

    '타고르는 우리에게 살아 있는 영혼과 빛, 조화의 상징이다.

    폭풍우 가운데에서 날아오르는 자유로운 새요.

    에어리얼 요정이 금색 하프로 타는 영원의 노래다.

    그러나 그의 예술은 인간의 불행이나 투쟁을 간과하지 않는다.

    그는 이 세상의 '위대한 파수꾼'이다.

    이제껏 인간이 성취하고 창조한 모든 것의 뿌리는 시와 사랑의 강 속에 있다.'

     

    ​ '시와 사랑의 강',

    아인슈타인이 시인인지 물리학자인지 모를 정도의 문학적인 표현이다.

     

     

    가장 유명한 묘비문

    작가 스스로가 쓴 묘비문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보물섬’의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시다.

    말년에 사모아 섬에서 원주민들과 함께 미국과 유럽의 제국주의에 대항해 싸웠던 그가 죽자

    원주민들은 베아산 기슭을 따라 길을 닦고 스티븐슨을 하늘 가까운 산마루에 안장했다.

     

    그리고 묘비에 다음과 같은 그의 시를 새겼다.

    '드넓은 별이 총총한 하늘 아래 무덤 하나 파고 나를 눕게 하소서 바다에서 고향 찾은 선원처럼,

    산에서 고향 찾은 사냥꾼처럼' ​

     

    우리나라에는 '괴상한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던 '와이즈버그, 오하이오'의 작가 셔우드 앤더슨도

    '죽음이 아니라 삶이야말로 위대한 모험이다.'라는 말을 자신의 묘비문으로 남겼다.

     

    예이츠의 묘비에는 '삶에, 그리고 죽음에 차가운 시선을 던지라/마부여 지나가라!'라고 쓰여 있고,

    에밀리 디킨슨의 묘비에는 아주 짧게 '돌아오라는 부름을 받다'라고 적혀 있다. ​

     

    그런데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묘비문은

    언젠가 아버지가 쪽지에 적어 놓으셨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힌 어는 성공회 주교의 글이다.

     

    ​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무한한 상상력을 가졌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좀 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는 마지막 시도로,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는 자리에서 나는 깨달았다.

    만일 내가 나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누가 아는가.

    그러면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지!' ​

     

     

    돈키호테

    줄거리만 보면 우스꽝스러운 광인의 어쭙잖은 모험담 같지만,

    ‘돈키호테’는 단순한 익살이나 풍자소설이 아니다.

     

    전편은 1605년에, 후편은 1615년에 출판된 이 방대한 작품은

    서구 문학 최초의 소설이라는 문학사적 가치 외에도 진정한 ‘인간’을 그린 최초의 작품이라는 격찬을 받기도 했다.

     

    작가 세르반테스는 당시 크게 유행했던 중세 기사들의 허황된 무협 연애담을 패러디하기 위해서 이 소설을 썼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600여 명의 인물이 등장, 프랑스의 비평가 티보데가 ‘인류의 책’이라고까지 부르는 대작이 되었다.

     

    영어의 ‘키호티즘 quixotism’이라는 단어도 돈키호테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는데,

    이 말은 현실적 물질주의에 도전하고 자신의 꿈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저돌적으로 나아가는 성품이나 경향을 일컫는다.

     

    그런데 이 세상은 돈키호테가 기사도 정신으로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중세처럼 조화롭거나 평화롭지 못하고,

    정의를 바로잡기 위해 손을 뻗는 일은 결국 허사로 돌아가기 일쑤라는 것이다.

     

    그래서 돈키호테가 마지막 모험에서 돌아와 제정신이 들어 임종한 후 그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새겨졌다.

    ‘광인으로 살다가 제정신으로 죽은 이여’ ​

     

    하지만 햇빛 눈부신 이 가을날 오후,

    어쩌면 돈키호테처럼 잡을 수 없는 별에 손을 뻗치고,

    순수하고 정결한 것을 사랑하고,

    이루지 못할 꿈이라도 꾸는 ‘광인’의 삶이 차라리 행복한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업적 보고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서강대 교수들은 소위 ‘업적 보고’라는 것을 한다.

    지난 1년간의 학문적 교육적 업적을 점수로 환산하여 학교에 보고하는 것이다.

     

    국내 학술지 논문 한 편에 백 점, 전공서적 한 권에 5백 점,

    게다가 교육 활동도 점수에 들어가서,

    학기 초에 교안을 제때 학생들에게 주었는지에 6점,

    동아리 지도활동에 5점 추가,

    휴강을 하면 5점 마이너스,

     

    열심히 덧셈, 곱셈을 하며 행여 점수 될 만한 일을 1점이라도 잊은 게 없는가 골똘히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런데 점수 기준 평가표를 보면 재미있는 항목이 있다.

     

    ‘수필집, 또는 신문 칼럼을 묶어 낸 책은 고려 외’ 즉 0점 처리라는 것이다.

    재능은 없어도 가끔 ‘수필’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글을 쓰고 또 신문 칼럼을 쓰고 있으니,

    나는 공교롭게도 업적 안 되는 일만 골라서 하고 있는 셈이다. ​

     

    그런데 신문 칼럼은 그렇다 치고, 소설집, 시집이 권당 5백 점인 데 반해 수필집은 0점이라는 것은 좀 그렇다.

    아마도 수필은 학문과 별로 관계가 없고 재능과 노력이 없이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이라는 발상에서 나온 듯하다.

     

    하긴 장영희 같은 사람이 기껏해야 ‘신변잡기’를 쓰고 나서 ‘수필’이라고 박박 우기면 곤란하니 그럴 법도 하지만,

    제대로 된 수필은 진정한 의미에서 엄연한 문학의 한 장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