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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구성적 아이디어
글을 시작하는 단계에는 테마와 주제 이외에도 고려해야 할 또 다른 중요한 요소가 있다.
그것은 글의 구성적 아이디어이다.
구성적 아이디어는 글을 서술할 때 사용할 핵심적인 서술 전략을 의미한다.
기존의 개념과 사고에 반발해 이와 상반되는 해석을 내놓는 것, 이것은 구성적 아이디어를 얻는 첫 번째 비결이다.
구성적 아이디어를 얻는 두 번째 방법은 어떤 개념이나 사물, 혹은 주장이나 문제의 잘못된 점을 날카롭게 비판하거나 논박하는 것이다.
구성적 아이디어를 얻는 세 번째 방법은 자신이 쓰고자 하는 테마와 다른 것을 견주어 비교하거나 대조하는 방법이 있다.
구성적 아이디어를 얻는 네 번째 방법은 예화를 사용하여 자기주장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를 다시 정리하면’,‘결론적으로’,‘위에서 살핀 것처럼’ 등의 마무리 어구를 사용하여 결말을 쓸 수 있다.
이들 어구의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요약’을 할 때 주로 쓰는 방식이다.
이들 마무리 어구는 본문과 결말을 분명하게 구분해 준다.
잘 읽히는 글은 나의 문장 호흡과 일치하는 글이다.
예전에 이런 경험이 있다.
대학원 다닐 때였는데, 한 후배는 늘 보고서만 쓰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 후배는 먼저 자기 나름대로 보고서를 쓴 다음에, 그 보고서를 읽어보게 될 교수의 최근 논문을 찾아 읽으면서 자기 보고서의 말투를 그 논문에 나오는 말투로 바꿔 썼다.
그러니까 자기가 쓰는 문형을 교수가 쓰는 문형으로 번역(?) 한 것이다.
교수의 입장에서는 이 학생의 글이 마치 자신이 쓴 글처럼 친근감 있게 읽혔을 것이고, 당연히 좋은 점수를 주었을 것이다.
콜럼부스여, 달걀 값 물어내라(김민웅)
달걀의 겉모양은 타원형이다.
애초에 세울 이유가 없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달걀을 세워보겠다는 것은 생명의 원칙과 맞서는 길밖에 없다.
결국 콜럼부스의 달걀은 서구의 제국주의적 팽창정책을 뒷받침하는 사고의 원형이 되었다.
얼마나 많은 생명이 이런 식으로 무지막지하게 달걀 세우기를 당했는지 모른다.
정작 오늘날 필요한 발상의 전환은 달걀의 모양새가 왜 타원형인가를 진지하게 묻는 일에서 시작된다.
원래의 타원형을 지키려는 새로운 노력이 오늘의 상식을 깨지 못할 때 생명의 신음 소리는 도처에서 계속 들리게 될 것이다.
선물에 관한 명상(이진경)
포틀래취라고 알려진 유명한 선물 게임이 있다.
그 게임에선 선물을 받으면 그보다 더 많은 선물로 답례해야 한다.
그렇게 답례하지 못하면 지는 것이다.
최종적인 승자는 남들이 더 이상 갚을 수 없을 정도의 선물을 주는 사람이다.
이 승자는 대개는 부족의 추장이 된다.
뒤집어 말하면, 추장이 되려면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다른 이들에게 선물해야 한다.
간디의 물레(김종철)
간디는 절대로 몽상가는 아니다.
그가 말한 것은 폭력을 통해서는 인도의 해방도, 보편적인 인간해방도 없다는 것이었다.
비폭력주의 운동은 결코 수동적인 저항인 것이 아니었다.
물레는 무엇보다 인간의 노역에 도움을 주면서 결코 인간을 소외시키지 않는 인간적 규모의 기계의 전형이다.
간디는 기계 자체에 대해 반대한 적은 없지만, 거대 기계에는 필연적으로 복잡하고 위계적인 사회조직, 지배와 피지배의 구조, 도시화, 낭비적 소비가 수반된다는 것을 주목했다.
생산수단이 민중 자신의 손에 있을 때 비로소 착취구조가 종식된다고 할 때, 복잡하고 거대한 기계는 그 자체 비인간화와 억압의 구조를 강화하기 쉬운 것이다.
간디는 산업화의 확대, 혹은 경제성장이 참다운 인간의 행복에 기여한다고는 결코 생각할 수 없었다.
간디가 구상했던 이상적인 사회는 가치 충족적인 소농촌공동체를 기본 단위로 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중앙집권적인 국가기구의 소멸과 더불어 마을 민주주의에 의한 자치가 실현되는 공간이다.
간디에게 있어서 물레는 그러한 공동체의 건설에 필요한 인간 심성의 교육에 알맞은 수단이기도 했다.
물레질과 같은 단순하지만 생산적인 작업의 경험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리 위에 기초하는 모든 불평등 사상의 문화적 심리적 토대의 소멸에 기여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기 먹을 빵을 손수 마련해 먹는 창조적 노동에의 참여와 거기서 얻는 기쁨은 소박한 삶의 가치를 진정으로 긍정할 수 있게 하는 토대를 제공해 줄 것이라고 간디는 생각했다.
연비(남윤호)
지난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콜금리 목표치를 연 3.5%에서 유지하기로 했다.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는 게 동결 이유다.
이를 가리켜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아쉬운 조치라고 했다.
가속 페달을 더 밟아야 할 때인데도 너무 조심운전을 한다는 불만의 표식인 듯하다.
그렇다면 경제정책의 연비가 자꾸 떨어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안전운전을 하고 있는데도 공연히 조급해하는 것일까?
아날로그와 디지털(정희모)
사전적으로 디지털이란 손가락이란 뜻으로, 라틴어 디지트에서 온 말이다.
손가락으로 1,2,3 등을 셀 수가 있다.
그래서 손가락은 0과 1을 이용하는 디지털 방식을 상징한다.
반면에 아날로그는 사전적으로 있는 그대로 모방한다는 개념이다.
예컨대 아날로그 방식의 TV는 소리, 빛, 전기 등의 파장을 갖는 것으로 디지털 TV보다 자연에 가깝다.
반면에 디지털 TV는 화상이나 음성 신호를 컴퓨터 파일이나 CD에서와 같이 디지털 신호로 바꾼 것으로 아날로그 방식에 비해 선명한 화질을 얻을 수 있다.
나는 가끔 디지털보다 아날로그가 좋다는 생각을 한다.
때로 더디 가고, 때로 느리고, 때로 멈추는 것도 빨리 가는 것 못지않게 필요하다.
전자메일보다 때 묻은 편지가, 핸드폰보다 직접 골목길을 돌아 친구 집에 찾아가는 것이 훨씬 따뜻하고 정겹다는 것을 아무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디지털도 인간다운 따뜻함을 지니기 위해 아날로그의 도움이 필요하다.
디지털만 외치다가 우리 모두는 차가운 기계의 노예가 될지도 모른다.
정녕 문명충돌인가(김명섭)
탈냉전기를 맞이하면서 미국은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지만, 정작 미국으로 들어가면 세계가 없어지는 기현상이 빚어졌다.
보통의 미국민들은 국제문제에 너무도 무관심했고, 그러한 미국민들에 의해 선출된 정치인들의 정책은 문명적 융합을 통한 국제적 표준의 수립이 아닌 미국적 표준의 세계화라는 일방주의의 함정에 빠져들었다.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은 자기 성취적 예언이 되고 말았다.
우리 안의 이기주의(김용석)
개인주의에서는 말뜻 그대로 개인이면 누구든 중요시한다.
나라는 개인만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나, 너, 그, 그녀 등 모든 개인을 중요시한다.
즉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의 가치와 존엄 그리고 권리를 전제하는 것이다.
따라서 타인에 대한 이해와 타인을 수용할 자세는 개인주의의 본질이다.
반면 이기주의에서는 자기 자신만을 중시하므로 타인을 이해하거나 수용할 자세가 돼 있지 않다.
즉 나의 존재는 나만을 위한 것이다.
이를 다시 정리하면 개인주의는 모든 개인을 위한 것이고, 이기주의는 각자 자기만을 위하는 것이다.
이제 결론은 분명하다.
개인주의가 발달하면 타인에 대한 배려와 타자 수용성이 향상되므로 공동체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는 것이다.
자유론(밀)
진리가 가지는 진정한 이점은 다음과 같다.
한 의견이 진리일 때 그것을 한두 번 소멸시킬 수 있지만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것을 재발견하는 사람들이 또다시 나오게 될 것이다.
또 그것이 재등장하게 되는 시기 중 일부는 유리한 환경으로 인해서 박해를 탈피하여 살아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진리는 그것을 억압하려는 모든 기도에 대항하여 조금씩 앞으로 전진하여 왔다.
진리의 힘은 바로 거기에 있다.
고령화 논의에서 빠진 해법(서유경)
한동안 우리 사회에서 논쟁의 중심에 있던 세계화라는 용어가 요즘 들어 부쩍 지구화로 번역되고 있다.
이런 미묘한 변화는 지구시민사회라는 새로운 용어의 등장과 궤를 같이 하고 있는 듯하다.
지구시민사회라는 용어는 1990년대 서구 사회가 지구화와 시민 사회라는 두 용어의 말과 뜻을 합성하여 만들어낸 신조어로 알려져 있다.
세계 정부가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서 지구 시민 사회라는 말은 의미상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을 포괄하는 지구 공동체를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이 진정으로 의미하는 하나의 실체로서 지구 공동체는 아직 요원 이상에 불과한 것 같다.
마이너스 1의 평화(진중권)
이건 내 가설이다.
이지메란, 정치적으로는 파쇼독재에 천박한 자유주의가 결합한 결과, 역사적으로는 해방 전 일제의 국가주의적 식민 지배에 해방 후 미국식 천민자본주의 문화가 천박하게 중첩된 결과가 우리 2세들 사이에서 뒤늦게 문화적으로 발현되는 현상이다.
이제 내 가설을 그럴듯하게 만들어 보겠다.
학교는 신화적 폭력의 세계다.
이 무한 경쟁의 세계에서 만인은 만인의 적이다.
네가 자고 있을 때에도 경쟁자의 책장은 쉬지 않고 넘어간다.
네가 쉬고 있을 때 친구라 불리는 적들은 사정없이 네 머리를 밟고 위로 올라간다.
이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유일한 정의는 폭력이다.
그래도 사람의 새끼들이라고 짐승과는 다른 점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질서를 수립해야 한다.
어떻게?
서로에게 행하는 폭력의 잠재력을 오직 한 명의 약자에게 집중적으로 투사하기로 약속하는 것이다.
다대다의 조화로운 폭력으로 이행할 때 비로소 학급에는 질서가 생긴다.
위대한 마르크스, 과연 그의 말대로 인류의 역사는 학급 투쟁의 역사였던 것이다.
동화를 위한 계산(복거일)
1990년대 가장 매력적인 동화들 가운데 하나는 우림을 보존해서 관광과 약품의 원천으로 삼자는 것이었다.
근본적 문제는 통념과는 달리 우림엔 많은 잠재적 약품들이 사람들의 눈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미국 정부 기관들은 1960년부터 1982년까지 12000종의 식물에서 뿌리와 열매와 껍질 표본 35000개를 수집했지만, 그것들에서 발견된 중요한 약품들은 겨우 셋이었다.
1986년부터 1996년 사이에 수집된 표본들에선 단 하나의 약품도 개발되지 않았다.
더 직접적 원인은 선별 기술의 빠른 발전이다.
원주민들에게 이미 약효가 입증된 식물들을 알아내서 분자들을 선별하는 것은 분명히 좋은 방안이지만, 요즈음은 선별 기술이 워낙 발달해서, 아예 모든 물질들을 선별하는 것이 오히려 경제적이다.
게다가 민속 의사들과 제약 외사들의 관심사가 겹치는 경우가 드물다는 사실도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민속 의사들은 주로 원주민들을 괴롭히는 기생충들을 다스리는 처방들을 많이 가지지만, 그런 기생충들은 대부분 서양엔 없다.
따라서 그런 처방들은 제약 회사들에겐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
동물학교(이세정)
동물들이 모여 학교를 만들었다.
그들은 달리기, 오르기, 날기, 수영 등으로 짜인 교과목을 채택했다.
동물학교는 행정을 쉽게 하기 위해 모든 동물이 똑같은 과목을 수강하도록 했다.
오리는 선생보다 수영을 잘했다.
날기도 그런대로 해냈다. 하지만 달리기 성적은 낙제였다.
오리는 학교가 끝난 뒤에 달리기 과외를 받아야 했다.
달리기 연습에 열중하다 보니 그의 물갈퀴는 닳아서 약해졌고, 수영 점수도 평균으로 떨어졌다.
토끼는 달리기를 잘했지만, 수영 때문에 신경쇠약에 걸렸다.
다람쥐는 오르기에서 탁월한 성적을 냈지만 날기가 문제였다.
날기반 선생이 땅에서 위로 날아오르도록 하는 바람에 다람쥐는 좌절감에 빠졌다.
날기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솜씨를 보였지만 다른 수업은 아예 참석도 하지 않은 독수리는 문제 학생으로 전락했다.
결국 수영을 잘하고, 달리기와 오르기, 날기를 약간할 줄 알았던 뱀장어가 가장 높은 평균 점수를 받아 학기 말에 졸업생 대표가 되었다.
게놈 지도의 득과 실(강창율)
인간 게놈 지도의 완성은 여러 측면에서 적지 않은 파급효과를 나타낼 것이다.
학문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인간의 진화와 여러 생명현상을 보다 정확하게 밝힐 수 있는 도구를 확보했다고 할 수 있다.
인간 게놈 지도에 따르면 예상했던 10만 개 정도의 유전자가 아닌 3만 5천 개 정도의 유전자로 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하등동물에 비해 겨우 2배 정도의 유전자에 불과하다.
이는 인간의 매우 복잡한 기능에 비해 매우 적은 수의 유전자가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하나의 유전자가 여러 종류의 단백질을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기서 만들어진 각각의 단백질은 여러 기능을 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 유전자는 하나의 작동만을 할 수 있다는 과거의 사고에서 벗어나 그 역할의 다양성을 더욱 연구할 필요가 생겼으며, 유사 유전자 기능의 비교 분석을 포함하여 생명현상을 재해석해야 하는 보다 복잡한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건맨과 폰맨(김용석)
건맨과 폰맨의 유사점은 참으로 많다.
그것은 대부분 휴대성 때문 파생된 특성들인데, 그들이 항상 휴대하는 ‘건’과 ‘폰’은 일종의 페티시즘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애지중지하며 잠시라도 몸에서 떼어놓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고 그것을 장식하는 데 열을 올린다.
‘공동체 평화’의 필요에 따라 건맨들이 그랬던 것처럼 폰맨들도 자신들의 휴대품을 공연장, 교회, 강당 등 특정한 장소에서는 입구에 맡겨야 할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결론적으로 건맨과 폰맨 사이의 가장 큰 유사점은 그들이 일상 속 문명과 야만의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또한 인간의 두 얼굴이기도 하다.
프랑스 바칼로레아 시험 답안 중
플라톤은 국가에서 동굴 우화의 형식을 빌려 진리가 얼마만큼 고통스러운가를 보여주었다.
동굴에 갇힌 죄수는 동굴 벽에 그려진 거짓 환영에 사로잡힌 나머지 스스로 동굴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 죄수가 동굴 밖으로 나오자마자 태양빛의 현란함에 넋을 잃고 눈이 멀게 된다.
그는 동굴 속으로 돌아가 동굴 바깥 세계의 일들을 동료 죄수들에게 들려주지만 곧 비웃음과 빈정거림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은 벽에 비친 환영이 거짓된 것임을 모르며, 또 이를 검토해 보아야 한다는 사실도 부정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