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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불가사리 한 마리

    당신이 목숨 바쳐 일한들, 아프가니스탄에서 고통받는 사람 전체 중 얼마를 돌볼 수 있느냐?

    그럴 때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되새긴다. ​

     

    바닷가에 사는 한 어부가 아침마다 해변으로 밀려온 불가사리를 바다로 던져 살려주었다.

    그 수많은 불가사리 중 겨우 한 마리를 살린다고 뭐가 달라지겠소?

     

    동네 사람의 물음에 어부는 대답했다.

    그 불가사리로서는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건진 거죠. ​

     

     

    씨앗은 희망의 다른 이름

    아프가니스탄의 마흔다섯 살 농부 파리둔 역시 꿂 주림 끝에 종자씨까지 다 먹었다며 파종할 씨가 제일 급하다고 했다.

    거저 주는 식량은 더 이상 받기 부끄럽다고 한 번만 씨앗을 주면

    제힘으로 농사 지어 자기 식구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그게 훨씬 떳떳하다고 말했다. ​

     

     

    월드비전

    5년 전 이 단체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안경 가게인가 했다.

    나중에 오렌지색 로고를 보고서야 세계 여행 중, 특히 아프리카에서 수없이 스쳤던 단체였다는 것을 알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세계적인 구호 단체의 발생지가 다름 아닌 한국이라는 것. ​

    월드비전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전쟁고아와 미망인을 돕는 일로 시작했다.

     

    한경직 목사님이 아이들을 돌보시고 밥피얼스 목사님이 외국에서 필요한 자금을 모아 오셨다.

    이렇게 작은 규모로 출발한 긴급구호팀이

    지금은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약 1억 명의 사람을 돌보는 세계 최대의 기독교 구호 및 개발단체가 된 것이다. ​

     

     

    긴급구호 요원의 몸값

    '만약 인질로 잡히면 여러분 몸값이 얼만지는 잘 알죠?'

    잘 알고 있다.

    긴급구호 요원의 몸값은 0원이라는 것을.

     

    우리 단체는 납치범들과 몸값 협상을 하지 않는다.

    납치 세력이 인도적 지원을 원하면 무엇이든 들어준다.

     

    구호 단체인 우리가 아군이건 적군이건 굶어죽는 사람,

    아파 죽는 사람들에게 식량이나 약품을 갖다는 건 당연하기 때문이다. ​

     

     

    납치범에게 대응하는 법

    제일 수칙은 납치범들의 신경을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

    납치범도 대단히 긴장해 있는 상태이므로 거칠게 반항하거나 말대꾸하는 등 신경을 건드리는 행동은 절대 금물이다.

     

    비굴할 필요는 없지만 고분고분할 필요는 있다는 것이다.

    양손은 언제나 잘 보이게 내놓아 다른 짓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몸을 움직일 때는 될수록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납치범을 업신여기는 태도도 안 된다.

    여럿이 잡힌 경우 잡힌 사람들끼리 속삭이는 것도 위험하다.

     

    두 번째로는 그들이 원하는 정보를 아는 대로 순순히 알려줘야 한다.

    세 번째로 만약 납치범이 밥을 안 주거나 잠을 안 재우거나 심지어 고문을 하는 등 기본 인권을 무시해도

    절대 거칠게 항의해서는 안 된다. 참고 또 참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납치범과 최대한 인간적인 공통점을 찾아야 한다.

    이때 아주 유용한 것이 바로 가족사진이다. ​

     

     

    세계의 화약고

    출입국 관리소의 군인은 가타부타 말도 없이 세 시간 동안 기다리게 하더니

    거의 한 시간 이상 집요한 심문과 철저한 몸수색을 했다.

     

    범죄자를 추궁하는 양 고압적인 말투와 몸짓이었다.

    이런 태도에 내가 최소한의 권리를 주장하며 항의하자 담당 군인이 눈을 부라린다.

     

    내 항의에 대한 이스라엘 측의 답은 보안 때문이란다.

    난 그나마 외국인이라고 봐준 거란다.

     

    팔레스타인인을 대하는 이스라엘 군인의 태도는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

    땡볕에서 몇 시간씩 무작정 기다리게 하는 건 보통이고

    심지어는 진통 중인 임산부조차 통과시켜주지 않아

    그 자리에서 아이를 낳고서도 응급조치를 받지 못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문제는 큰 도로에 있는 이런 검문소뿐만이 아니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아무 곳에나 콘크리트로 저지선을 만들어놓고 사람들의 이동을 철통같이 통제한다.

     

    팔레스타인은 크게 예루살렘, 서안지구(웨스트뱅크), 가자 지구의 세 지역으로 나뉘는데

    이 지역 내에서 약 170여 개의 검문소가 있다.

     

    특히 가자 지구는 수십 곳의 상설 이스라엘 검문소를 거치지 않고서는 마음대로 이동할 수 없는 거대한 감옥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국제법상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 안에 이런 이스라엘 검문소를 설치하는 것 자체가

    완전히 불법이라는 사실이다. ​

     

    분리 장벽은 정착민촌과 더불어 팔레스타인 문제의 핵심이다.

    2002년 6월부터 짓기 시작해 2005년 말 완공할 예정이라는데 높이 5-8미터,

    총 연장 길이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왕복 거리인 832킬로미터이다.

     

    이스라엘로의 출입을 완전히 봉쇄하는 국경 분리선이다.

    분리 장벽이 완성되면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독 안의 든 쥐가 된다.

     

    분리 장벽을 조사했던 유엔 인도 지원국은

    이 장벽 때문에 팔레스타인인들의 삶이 심각하게 붕괴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국제사법재판소도 2004년 7월에 분리 장벽은 점령지 거주민들의 이동권과 직업 선태권,

    교육 및 의료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판결했다. ​

     

    라말라 난민촌에서 만났던 아홉 살짜리 파티마의 오빠는

    일주일 전에 친구들과 함께 탱크에 돌을 던지다가 총알에 맞아 즉사했단다.

     

    오빠는 겨우 열한 살이었다.

    '착한 오빠가 죽어서 너무 억울해요' 그러더니 갑자기 그 예쁜 눈에 적의를 불태우며 말을 이었다.

    '우리 오빠를 죽인 이스라엘 군인, 빨리 커서 다 죽여버릴 거예요'

    그저 인형놀이나 해야 할 아이의 입에서 그렇게 험한 말이 거침없이 나오는 게 안타까웠다. ​

     

    직접 현장에 가보면 이 문제는 종교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내가 만난 팔레스타인인들 가운데 유대교인이 밉다고 말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들에게 총을 겨누고 삶을 파괴하는 이스라엘 군인들을 미워할 뿐이다.

    아마추어의 눈으로 봐도 이건 명백한 영토 분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