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월든

     

     

     

    나는 5년 이상을 오직 육신의 노동만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 결과, 1년 중 약 6주일간만 일하고도 필요한 모든 생활 비용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여름의 대부분과 겨울 전부를 나는 순전히 공부하는 데에 사용할 수 있었다.

    한때 나는 학교 경영에 온갖 노력을 기울인 적이 있었다.

     

    그러나 비용이 수입과 맞먹거나 초과하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교육자다운 사고와 신념을 가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직업에 맞는 복장을 하고 준비를 해야 했으며 그 외에도 시간을 많이 빼앗겼던 것이다.

     

    또한 같은 인간에 대한 사랑의 감정에서가 아니고 단지 먹고살기 위해서 아이들을 가르쳤으므로 그것부터가 실패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굴리스탄(화원 또는 장미원)

    페르시아의 시인 사아디 ​

    사람들이 현자에 묻기를, 지고한 신이 드높고 울창하게 창조한 온갖 이름난 나무들 가운데, 열매도 맺지 않는 삼나무를 빼놓고는 그 어느 나무도 '자유의 나무'라고 불리지 않으니 그게 어찌 된 영문이니이까?

     

    현자가 대답하기를, 나무란 저 나름의 과일과 저마다의 철을 가지고 있어 제철에는 싱싱하고 꽃을 피우나 철이 지나면 마르고 시드는도다.

     

    삼나무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항상 싱싱하느니라.

    자유로운 자들, 즉 종교적으로 독립된 자들은 바로 이런 천성을 가지고 있느니라.

     

    그러니 그대들도 덧없는 것들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

    칼리프들이 망한 다음에도 티그리스 강은 바그다드를 뚫고 길이 흐르리라.

     

    그대가 가진 것이 많거든 대추야자나무처럼 아낌없이 주라.

    그러나 가진 것이 없거든 삼나무처럼 자유인이 될지어다. ​ ​

     

     

    가난한 자의 허세

    토머스 커루_17세기 영국 시인

    불쌍한 가난뱅이여, 주제넘은 생각을 하다니.

    그대의 초라한 오두막이, 함지 같은 집이 값싼 햇볕 속에서 또는 그늘진 샘터에서 풀뿌리와 채소로 게으르고 현학적인 덕을 기른다 하여 천상에 한자리를 요구하다니.

     

    거기서 그대의 바른손은 아름다운 덕들이 꽃 피어오를 인간의 정열을 마음에서 잡아 뜯어 본성을 타락시키고 감각을 마비시켜 고르곤이 그랬듯이, 뛰는 인간을 돌로 변케 한다.

    우리는 그대의 어쩔 수 없는 절제나 기쁨도 슬픔도 모르는 부자연스러운 어리석음의 지루한 교제는 원치 않는다. ​ ​

     

     

    고독

    내 집에는 무던히도 많은 친구들이 있다.

    특히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아침에는 더욱 그렇다.

     

    나의 처지가 이해될 수 있도록 몇 가지 비유를 들어보겠다.

    마치 웃는 것 같은 특유의 울음을 큰 소리로 우는 호수의 저 되강오리가 외롭지 않듯이. 그리고 월든 호수가 외롭지 않듯이 나도 외롭지 않다.

     

    저 고독한 호수가 도대체 어떤 벗들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그러나 저 호수는 그 감청색의 물속에 '푸른 악마들'이 아닌 푸른 천사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태양은 혼자이다.

    안개가 자욱한 날에는 태양이 두 개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하나는 가짜 태양인 것이다.

     

    하느님 역시 홀로 존재한다.

    그러나 악마는 결코 혼자 있는 법이 없다.

    그는 많은 패거리들과 어울려 대군을 이루고 있다.

     

    목장에 핀 한 송이 우단현삼이나 민들레 꽃, 콩잎, 괭이밥, 등에 그리고 뒤영벌이 외롭지 않듯이 나도 외롭지 않다.

    '밀브룩'이나 지붕 위의 풍향계, 북극성, 남풍, 4월의 봄비, 정월의 해동 그리고 새로 지은 집에 자리 잡은 첫 번째 거미...... 이런 모든 것들이 외롭지 않듯이 나도 외롭지 않다. ​

     

    숲속에 눈이 펑펑 내리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 긴 겨울밤이면 호수의 옛 개척자며 원래 주인이었던 이가 이따금 찾아온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이 양반이 월든 호수를 파서 돌로 기반을 단단히 다진 다음 주변에 소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그는 나에게 옛날에 있었던 일과 새로운 영원에 대하여 이야기해 준다.

    우리 두 사람은 사과나 과일즙 없이도 사교적인 기쁨과 유쾌한 잡담을 나누면서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내곤 한다.

     

    나의 친구는 몹시 현명하고 유머 감각이 풍부해서 나는 그를 무척 좋아한다.

    그는 '고프'나 '휠리'보다도 더 사람 눈에 띄지 않게 돌아다닌다.

     

    사람들은 그가 이미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디에 묻혀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

    한 늙수그레한 마나님도 이 근처에 살고 있는데,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가 않는다.

     

    때때로 나는 이 마나님의 향기로운 약초밭을 거닐면서 약초도 캐고 그녀의 얘기를 듣곤 한다.

    이 마나님은 비할 데 없는 풍요한 천재성을 겸비한 분인데, 뛰어난 기억력은 신화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모든 전설의 기원과 그 전설이 어떤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까지 말할 수 있다.

     

    안색이 훤하고 기력이 좋은 이 늙은 부인은 어떤 기후나 계절도 다 좋아하며 자신의 자녀들보다도 더 오래 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

     

    자연은 말로 표현할 수없이 순수하고 자애로워서 우리에게 무궁무진한 건강과 환희를 안겨 준다.

    그리고 우리 인류에게 무한한 동정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만약 어떤 사람이 정당한 이유로 슬퍼한다면 온 자연이 함께 슬퍼해줄 것이다.

     

    태양은 그 밝음을 감출 것이며 바람은 인간처럼 탄식할 것이며 구름은 눈물의 비를 흘릴 것이며 숲은 한여름에도 잎을 떨어트리고 상복을 입을 것이다.

     

    내가 어찌 대지와 교제를 갖지 않겠는가?

    나 자신이 그 일부분은 잎사귀이며 식물의 부식토가 아니던가! ​

     

    우리들을 늘 건강하고 명랑하고 만족스럽게 해줄 묘약은 무엇인가?

    그것은 나나 당신의 증조부가 빚은 환약이 아니고, 바로 우리 모두의 증조모인 자연의 여신이 빚은 우주적이고 식물적이고 또 식물학적인 약인 것이다.

     

    이 약을 가지고 자연의 여신은 젊음을 유지해왔으며, 수없이 많은 '파아 노인' 같은 장수자들보다 항상 더 오래 살았으며, 그들의 썩은 지방으로 자신의 건강을 키워왔다. ​

     

    내가 원하는 만병통치약은 엉터리 의사가 저승의 강과 사해의 물로 조제해서는, 병의 운반용으로 제작된 것을 종종 볼 수 있는 저 길고 납작한 검은 배 같은 마차에 싣고 다니면서 파는 물약 병이 아니다.

     

    내가 진정 아끼는 만병통치약은 희석하지 않은 순수한 아침 공기 한 모금이다. ​

    아, 아침 공기! 만약 사람들이 하루의 원천인 새벽에 이 아침 공기를 마시려 들지 않는다면, 그것을 병에 담아 가게에서 팔기라도 해야 할 것이다.

     

    아침 시간에 대한 예매권을 잃어버린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아침 공기는 아무리 차가운 지하실에 넣어둔다 해도 정오까지 견디지 못하고 그전에 벌써 병 마개를 밀어젖히고 새벽의 여신을 딸 서쪽으로 날아가 버린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

     

    나는 늙은 약초의 아스클레피오스의 딸이며, 한 손에는 뱀을 들고 다른 손에는 그 뱀이 마실 물 잔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조각상에 새겨진 하기에이아 여신의 숭배자는 아니다.

     

    나는 오히려 주노 여신과 야생 상추의 딸이며, 신과 인간을 회춘시킬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주피터 신에게 술을 따라 올리는 모습으로 헤베 여신의 숭배자이다.

     

    이 여신이야말로 지구의 역사상 아마 가장 완벽한 신체 조건을 갖춘, 가장 건강하고 굳센 젊은 여성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리고 그녀가 나타나는 곳에는 어디서나 바로 봄이 열리는 것이다. ​

     

     

    맺는말 ​

    사랑보다도, 돈보다도, 명예보다도 나는 진실을 원한다.

    나는 산해진미와 맞 좋은 술이 넘치고 하인들이 아부하듯 시종 드는 잔칫상에 앉아 있었지만, 성실과 진실을 찾아볼 수 없었기에 그 냉랭한 식탁에서 배고픔을 안고 떠났다.

     

    손님 접대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음식을 차갑게 하기 위하여 구태여 얼음을 넣을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포도주가 몇 년 묵은 것이며 제조 연도가 얼마나 유명한 해인가에 대해 나에게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그들이 얻을 수도 살 수도 없는 또 다른 술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 술은 더 오래되었으면서도 더 새롭고 더 순수하고 더 훌륭한 연도에 제조된 술이었다.

    집과 뜰의 양식이나 '접대' 같은 것은 내게는 아무래도 좋다.

     

    나는 어느 왕을 방문했는데, 그는 나를 홀에서 기다리게 하는 등 손님을 맞이할 능력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이었다.

    내 집 근처에는 나무에 파인 구멍 속에 사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태도에는 참으로 왕자다운 데가 있었다.

    차라리 그를 찾아갔더라면 이보다 나은 대접을 받았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