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일단 뭐라도 쓴다.주제건, 첫 문장이건, 전하고 싶은 한 줄이건 상관없다.생각나는 것을 쓴다.물론 쓰다 보면 생각이 바뀌고, 처음 쓴 글은 형체도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그러나 무엇인가 써놓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아내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1989년 아내와 결혼했다.아내는 늘 칭찬한다.내가 아는 나는 60점에 불과한데, 아내는 나를 80점으로 치켜세운다. 처음엔 꿍꿍이로 알았다.그래야 내가 움직일 테니까.그러나 30년이다.일관되게 속일 순 없다.진심이란 걸 5~6년 전에 알았다. 기 드 모파상보바리 부인을 쓴 귀스타브 플로베르에게 제자가 있었다.몇 달이 지나도록 플로베르에게 배우는 게 없자, 제자가 불만을 토로했다.‘제가 소설을 배우기 위해 선생님댁 계단을 수천 번 오르내렸지만, 선생님은 ..

두 대통령을 만난 행복한 시간노무현 대통령이 책을 쓰라고 했다.글쓰기에 관한 책을 쓰라고 했다. ‘ 우리나라 글쓰기 수준을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특히 공직자들이 그래야 합니다.글쓰기에 관한 책을 쓰세요.연설비서관실에서 일하면서 깨달은 글쓰기에 관한 노하우를 공유하는 책을 쓰세요.’현직 대통령의 명령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나의 영웅이었다.엄혹했던 유신 시절,쉬쉬하며 소곤거리는 어른들의 입에서 나온 ‘김대중’이란 인물은 역사 속 위인 같은 존재였다. 그분을 3년 가까이 모시는 꿈같은 일이 현실이 됐다.아직도 믿기지 않는 일을 그때는 철없이 했다.내가 제정신이었다면 아마 단 한 줄도 그분께 보여드리지 못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글쓰기 지침1. 자네 글이 아닌 내 글을 써주게. 나만의 표현방식이..

피타고라스의 하늘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피타고라스 학파는 사실 학파라기보다 오르페우스교라는 신비주의 신앙을 가진 하나의 종교 집단이었다.그들은 매우 엄격한 종교적 계율을 지켰고, 무엇보다 영혼의 윤회를 믿었다. 피타고라스가 살던 당시 그리스에서는 막 철학적 사유가 싹트고 있었다.당시 철학계에서는 이 세상의 다양한 사물과 변화무쌍한 현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어떤 근본적인 것을 찾는 게 유행이었다.어떤 사람은 그걸 '물'이라 하고, 어떤 사람은 '불'이라 했다.그런데 피타고라스는 특이하게도 그런 눈에 보이는 물질이 아니라 추상적인 것, 곧 '수'가 만물의 근원이라 생각했다. 아테네 학당(라파엘로 산치오. 프레스코화)중앙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보인다.플라톤의 손은 하늘 위 이..

구성적 아이디어글을 시작하는 단계에는 테마와 주제 이외에도 고려해야 할 또 다른 중요한 요소가 있다.그것은 글의 구성적 아이디어이다. 구성적 아이디어는 글을 서술할 때 사용할 핵심적인 서술 전략을 의미한다.기존의 개념과 사고에 반발해 이와 상반되는 해석을 내놓는 것, 이것은 구성적 아이디어를 얻는 첫 번째 비결이다. 구성적 아이디어를 얻는 두 번째 방법은 어떤 개념이나 사물, 혹은 주장이나 문제의 잘못된 점을 날카롭게 비판하거나 논박하는 것이다.구성적 아이디어를 얻는 세 번째 방법은 자신이 쓰고자 하는 테마와 다른 것을 견주어 비교하거나 대조하는 방법이 있다.구성적 아이디어를 얻는 네 번째 방법은 예화를 사용하여 자기주장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를 다시 정리하면’,‘결론적으로’,‘위에서 살핀 것처럼’..

연속성의 인식 아폴리네르가 칼리그람 다음에 알코올을 썼으리라고는 결코 생각할 수 없었다.만약 그런 경우라면 그는 다른 시인이 되었을 것이고 그의 작품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련한 알론소 키하다(돈키호테)돈키호테는 산초에게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가 후대에 모범이 되기 위하여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모습의 인물들을 묘사했다고 설명해 준다.그런데 돈키호테 자신은 따라야 할 모범에서 제외된다.소설의 인물들은 그들의 미덕 때문에 찬양받기를 요구하지 않는다.이 인물들은 이해받기를 원하는데 이는 완전히 다른 점이다. 서사시의 영웅들은 승리의 순간이나 혹은 패배했다 해도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 위대함을 잃지 않는다.왜냐하면 있는 그대로의 인간 삶이 패배..

"책은 도끼다"라는 나는 왜 책을 읽느냐는 질문에 풍요로운 삶이라는 것이고, "다시 책은 도끼다"라는 어떻게 책을 읽느냐는 질문에 천천히라는 답을 제시한다. 독서를 금하노라(쇼펜하우어의 문장론)다독은 인간의 정신에서 탄력을 빼앗는 일종의 자해다.압력이 너무 높아서 용수철은 탄력을 잃는다.사람들은 판단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믿고 싶어 한다.문장이 난해하고 불분명하며 모호하다는 것은그 문장을 조립한 작가 자신이 현재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응석에 불과하다. 관찰과 사유의 힘에 대하여짧은 길을 긴 시간을 들여 여행한 사람은 경험상 행복한 사람입니다.꽃을 보려면 시간이 걸려 친구가 되려면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말이지. 살아간다는 건 봄을 한 번 더 본다는 것사랑이 투입되지 ..